일본이 한국의 조선업 지원과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에 돌입하는 등 양국 외교 갈등을 경제 보복으로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자, 우리 기업들은 추가 경제 제재 등 또 다른 보복 조치가 있을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의 경제 보복에 적잖은 피해를 경험한 기업들은 일본도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추가 경제 제재를 취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 한국 조선산업 지원 관련 WTO 양자협의 요청
지난 6일 일본은 주 제네바 대한민국대표부를 통해 우리나라의 조선산업 지원과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절차상의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 정부가 WTO 보조금협정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조선산업을 지원해 독자생존이 어려운 선박기업의 저가 수주를 조장했고, 이로 인해 일본 조선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본의 제소가 지난달 30일 우리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를 상대로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지운 판결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조선 수주가 중국을 제치고 올해 세계 1위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회복세가 뚜렷한 가운데, 일본의 이 같은 딴지가 악재로 다가올 우려가 적지 않다.
회복세를 타고 있다지만 그간 수주 절벽과 구조조정에 암울한 시기를 보냈던 한국 조선업이 아직 튼튼한 체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의 WTO 제소 절차 돌입은 선박 수주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일본 측이 문제제기한 사항의 통상법적 합치성을 재점검하고, 일본과의 양자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관의 지원이 상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으며, 국제규범에 합치한다는 점을 설명할 계획"이라며 원론적인 대응 방안을 내놨다.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현지 여론 악화 시 다른 업종까지 경제보복 확산 우려
문제는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일본 현지 여론이 악화할 경우, 조선업을 시작으로 다른 업종까지 추가 경제 제재 등 보복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화학·소재 업체들의 경우 일본과의 거래가 빈번하거나 합작 업체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경제 보복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경제 보복의 일환으로 일본 정부가 관세나 정책을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바꿀 경우,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장비 부품에 대한 일본의 의존도가 낮지 않다. 이는 한·일 무역수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2013년 253억 달러 △2014년 215억 달러 △2015년 202억 달러 △2016년 231억 달러 △2017년 283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최근 5년 가운데 최대치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반도체 호황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전년 같은 기간의 57.4%에 이를 정도로 늘면서, 일본으로부터의 제조용 장비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 작년에만 57억 달러에 달해 2016년 대비 127% 껑충 뛰어올랐다.
일본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반도체 장비·소재 등 부품의 한국 수출 금지에 나선다면, 공급부족 상황을 맞는 우리 반도체 업계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장비 업체로서는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기 때문에, 장비 수출량을 제한하는 제재는 일본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무역 제재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