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핵전력제한협정(INF)을 파기하겠다고 한 것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2일 보도했다.
INF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가 500∼5500km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미·중 양국은 무역통상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서도 충돌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나날이 고조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INF 파기 발표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푸멍쯔(傅夢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부원장은 SCMP를 통해 "트럼프의 INF 파기 선언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장기적 전략적 전투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INF 탈퇴후 군사력 강화에 나서면서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군사전문가인 콜린 코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도 "트럼프의 결정은 러시아와 중국의 군비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할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의 INF 철수를 이유로 자국의 군비개발을 정당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외교부는 아직까지 미국의 INF 탈퇴 선언에 아직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관영 환구시보는 22일 '미국의 INF 탈퇴는 매우 위험한 한 걸음'이라는 제하의 사평을 통해 우려를 드러냈다.
사평은 "트럼프 대통령이 INF 탈퇴의 이유로 중국을 거론했다"며 "하지만 중국은 미사일 등 전략적 무기 개발에서 항상 자제해 왔으며 미국, 러시아와 핵 역량을 겨룰 전략적 의향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줄곧 중국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고도 꼬집었다.
사평은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계속해서 의심하면서 중국의 전략적 리스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며 최근 미국이 내놓은 공격적 계획 대부분이 중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평은 "중국은 앞으로도 미국과 핵역량 경쟁을 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의 핵역량 증가 속도가 중국의 전략적 리스크 증가 속도보다 눈에 띄게 느리다"며 "미국이 잠재적으로 군사적 압박을 통해 중국 영향력을 견제하려하는 만큼 중국도 이에 대한 리스크 예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평은 중국은 자국 안보가 직면한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게 핵 위협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미국의 INF 탈퇴가 전 세계에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으로도 우려했다.
류웨이둥(劉衛東) 중국 사회과학원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INF 탈퇴 선언으로 미군이 더 자유롭게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개발 배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더 광범위한 의미로 보면 이는 러시아나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이 정말로 INF를 탈퇴하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잠수함 등에서 발사하던 기존 미사일을 지상발사형으로 개발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INF 탈퇴 발언은 비록 뜻밖이지만 사실 INF 조약은 지난 10년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그동안 줄곧 서로 이 조약을 위반했다며 문제를 제기해 온 것.
미국은 2014년에 러시아가 지난 2008년 실시한 순항미사일 실험이 INF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올해 2월에는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실전 배치가 조약 위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 측은 미국이 유럽에 구축한 미사일방어망(MD)체제가 INF 위반이라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