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한끼 식사를 위해 차린 식탁이 수십년에 걸친 농림축산식품 연구개발(R&D)의 결정판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과거 어느 시대도 지금처럼 높은 품질과 신선도를 유지한 식량을 안전하게, 먹고 싶은 만큼 먹었던 적은 없다.
농업R&D는 현재까지 일상생활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 우리 식생활과 주변 환경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 농업R&D는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 수확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주력해 먹거리 걱정을 없애줬다.
국민이 ‘안전’에 대해 걱정할 때 정답을 바로 꺼내 지금의 ‘안전한 식탁’을 만든 것도 농업R&D가 꾸준한 성과를 축적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농업R&D 생산성‧품질 유지 기여도 최대 70%
농업 관련 R&D는 더 복잡하고 발전된 성과를 내야 하는 제조업 등 다른 산업R&D와는 성격이 다르다. 농업R&D가 탄탄하다면, 수십년 전에 개발된 품종 하나가 지금 재배돼 식탁에 오를 수 있다.
기후‧토양 등이 변하면 또 다른 품종이 바로 재배에 들어갈 수 있다. 얼마나 농업R&D를 축적해 놓았는지가 미래 식량안보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얘기다.
그래서 농업강국은 관련 예산 3분의2를 토지‧인력‧기술‧기후 등 생산성 ‘유지’에 쏟아붓는다. 농업R&D의 생산성‧품질 유지 기여도는 20~70%에 달한다. 미국 농업부는 한 해 농업R&D의 70%를 생산성 유지에 사용한다.
우리나라와 기술격차가 5년인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다. 역대 가장 낮았던 생산성 유지 농업R&D 비중은 35%다. 반면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5~30%만 생산성 유지에 사용된다.
농림식품분야 R&D가 중단될 경우, 연간 경제적 손실과 소비자 피해액은 최대 12조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하나의 농산물에서 새로운 품종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벼 15∼18년 △감귤 10년 △사과 홍로 9년 △국화 백마 6년 △표고버섯 1기작 재배기간 4∼5년 등이다.
그렇다고 새로 개발된 모든 품종이 당장 재배에 들어간다고 볼 수 없다. 지금 국내 대표 사과로 자리 잡은 ‘홍로’는 1987년에 개발된 품종이다. 당장 시장에 팔 수 있는 R&D 성과를 내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기후‧토양 등뿐 아니라 소비자 기호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농업R&D 투자가 필요한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전체 R&D 예산의 5%에 불과한 농업R&D··· ‘허리띠 졸라매려’ 개방 앞두고 FTA 대응 기술 예산 ‘반토막’
그런데 최근 농업R&D에 대한 관심이 시들하다. 농림축산식품R&D의 중심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산림청의 올해 예산은 9824억원이다.
농업R&D 예산은 농식품부와 두 개의 청 전체 예산의 5.6% 수준이다. 올해 정부의 전체 R&D 예산 19조6681억원의 5%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관련 예산 비중은 5%가 유지되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기존 농업R&D를 유지해야 하고, 매년 새로운 과제까지 수행해야 하는 부담에 한국의 농업R&D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해 농식품부의 16개 핵심 R&D 과제 중 4개는 올해 시작된 신규 과제다. 반면 △수출전략기술개발 △고부가가치식품기술개발 △농촌개발시험연구 △기술사업화지원 △농생명산업기술개발 등 기존 5개 과제는 예산이 줄었다. 이 중 농촌개발시험연구는 예산이 82.7%나 깎였다.
농진청과 산림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진청은 올해 ‘첨단기술 융복합 차세대 스마트팜 기술개발’ 등의 과제를 시작했지만, △농축산물 부가가치 향상 기술개발 △자유무역협정(FTA) 대응경쟁력 향상기술 등의 과제에서 예산을 줄여야만 했다.
‘FTA 대응 경쟁력 향상기술’ 예산은 2016년과 비교해 예산이 반토막(215억→102억원) 났다. 산림청은 ‘산림분야 기후변화대응연구’ 예산이 지난해보다 62% 감축됐다.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산부처가 농업R&D와 제조업R&D의 차이점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농업R&D의 핵심은 생산성의 유지와 지속가능성의 확보”라며 “제조업R&D처럼 경제적 성과와 생산성 향상 위주로 농업R&D 예산을 심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