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주중 한국대사가 중국의 한반도 종전선언 참여에 미국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 간 비핵화 공조 체제가 다시 가동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비핵화 분수령, 中에 손 내민 美
노영민 대사는 8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중 간 시각차가 있는 지 묻자 "중국은 종전선언에 참여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을 포함한) 당사국도 반대하고 있지 않다"고 부연했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가 종전선언에 참여한다고 표현한 만큼 중국의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반대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가 어려워졌다는 기존 분석과 결이 달라 주목할 만하다.
노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밝힌 것처럼 북핵 문제에 있어 시진핑 주석의 도움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게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며 "미국이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에) 크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다. 북한이 공언한 핵 사찰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등이 원만하게 진행된다면 미국도 굳이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를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도 현 시점이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한 분수령으로 판단하고 중국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일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에 중국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이날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중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뒤 중국을 따로 찾은 적이 없었던 만큼 이례적인 행보다. 중국도 북·미 협상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하는 등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춰 왔으나 양국 간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북한과 밀월 관계를 형성해 미국을 자극했다.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의 태도 변화가 나타날 지 관심이 쏠린다.
◆시진핑, 다음달 북한 가나
시 주석 입장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일정 수준 진전을 이뤄야 북한 방문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시 주석의 연내 방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 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뤄질 전망이며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노 대사는 "시 주석의 방북은 우리가 중국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대화하는 부분의 하나"라며 "구체적인 시기는 중국과 북한이 적절한 시기에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중 고위급의 관계 정상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이같은 인식을 중국과 북한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다음달께 시 주석이 북한을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달 중에는 대형 정치 이벤트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열려 방북이 어렵다.
이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진 뒤 오는 11월 30일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에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중은 우호적으로 왕래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현재 제공할 정황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다만 미·중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비핵화 관련 공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당장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폼페이오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미국은 끊임없이 무역 마찰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대만 문제 등에 관해 중국의 권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잘못된 행위를 즉시 멈추기를 원한다"고 비판했다.
왕 국무위원은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문은 한반도 문제 등 주요 이슈에 관해 중국과 의견을 나누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는 양대 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양국이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 사회가 부여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결국 북한 비핵화와 무역전쟁이 별개로 다룰 수 있는 문제인지가 핵심"이라며 "중국도 비핵화 진전을 원하지만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