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1월에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30억원 손배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2004년 3월 최진실은 신한 아파트 광고모델로 계약을 맺은 바 있었죠.모델료는 2억5천만원이었습니다. 멍이 든 얼굴과 부서진 '집 내부' 장면을 공개하는 바람에 기업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게 신한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기업은 소장에서 '이 아파트에 들어가면 멀쩡한 부부도 갈라서겠다' 는 구절을 넣어놓았습니다.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사람이 부부였던 사람간의 치명적인 불화를 공개한 것은 경솔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소송에 대응해야 하는 최진실의 심경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저 '구절'은, 고통받는 한 여성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언어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송 제기 이후인 11월24일 최진실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했네요. 그녀는 신한의 손배소송 제기는 이혼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이혼녀를 '사회적 명예가 실추된 사람'이나 '사생활 관리를 못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는 주홍글씨 소송이라고 말했죠. 최진실의 분노가 담긴 발언은 이렇습니다. "신한은 이혼녀에겐 아예 아파트 분양 자격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이번 사건으로 '여성이 겪는 아픔'을 절감했습니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여성운동 단체와 연대해서 여성인권 향상을 돕고싶다는 의향도 밝혔죠.
12월 5일엔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결혼할 때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후배들 중에 나와 같은 입장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계약 위반이 된다면, 연예인은 가정문제가 있어도 이미지 때문에 숨겨야 되나요. 집에서는 맞고 터져도 밖에서는 웃어야 되나요. 이번 소송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 늘고 있는 세태와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진실은 '김영란법'으로 유명해진, 김영란 전대법관의 남편 강지원변호사를 알게 되죠. 강변호사는 신한 소송사건의 무료변론을 맡습니다. 최진실이 타계한 뒤에도 소송은 계속되었는데, 강지원은 최진실의 자녀들을 변론하는 자리에 섭니다. 법정공방은 6년의 줄다리기 끝에 2010년 2월9일에 마무리가 됩니다.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최진실의 자녀와 소속사를 대상으로 2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었습니다.
대체 법원이 어떻게 판결을 했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요.
1심 재판부는 모델료 2억5천만원을 돌려주라고 원고측 일부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최진실이 조성민의 폭행을 적극적으로 유발했다는 증거가 없어 스스로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며 최진실의 손을 들어줍니다. 대법원에선 "최진실에게는 이미지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데 멍든 얼굴과 충돌 현장을 촬영토록 허락하는 등 품위유지 약정을 위반했다"면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죠. 다시 돌아온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32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는 2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합니다.
최진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학자 오한숙희를 알게 됩니다. 최진실은 서점에서 오한숙희의 여성학 관련 책을 두 권 사서 읽기도 합니다. 그녀는 최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최진실은 똑똑했습니다. 내 책의 내용과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더군요.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잘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자신만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오한숙희는 최진실-신한 사건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혼이나 가정폭력으로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최진실사건이 어떻게 다뤄지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최진실 피소의 부당성을 알리는 서명운동을 펼치겠습니다. 여성 연예인 대상의 인권상담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도 여성학 강의가 필요합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