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얼굴을 한 8명의 윤석남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왼쪽에 얼굴과 상반신을 그린 4점의 드로잉이, 오른쪽에는 드로잉에 몇 가지 색을 칠한 자화상 2점이 걸렸다. 중앙에는 작업실에 앉아 있는 알록달록한 채색화 자화상 2점이 놓였다. 전시장 1층의 풍경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학고재갤러리에서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윤석남(79) 개인전 '윤석남'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자신을 주제로 한 회화, 조각, 설치 등 13점을 선보였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최초의 전시이자 처음으로 채색화를 발표하는 자리이다.
그가 채색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5년. 3년을 준비해서 채색화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붓을 많이 써보니까 붓이 가진 선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한국의 채색화를 보면 독특한 색채의 아름다움이 있다. 원색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유치하지 않고 생기발랄한 그러면서도 애환, 부딪치는 것에서 오는 칼날 같은 애환, 이런 것들이 느껴진다."
그는 늘 여성을 그린다.
남성과 정반대되는 입장에서 전투적으로 싸우기보다는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어머니로서 약하고 버림받은 것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힘을 중심으로 작업세계를 펼쳐 나갔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는 어머니. 시어머니, 언니, 심지어는 역사 속의 여성이 많이 등장했다.
"우리 역사서를 보면 남성 초상화만 있고 여성 초상화는 거의 없다. 초상화뿐만 아니라 남을 그려 준 것도 없더라. 억울하더라고요. 억울해서 역사 속에서 쓰러져간 한국 여성의 초상화를 죽기 전에 많이 그리고 싶다."
작가가 여성에 집착하는 것은 모성과 관련이 있다. 모성의 의미가 소극적이고 가정에 한정돼 있다기보다는 굉장히 포괄적이다.
"온 우주의 모순적인 삶 자체를 보듬을 수 있고, 자기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모성의 큰 의미가 아닐까 말하고 싶었다."
▶처음 공개하는 자화상과 채색화
전시장 1층에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채색화 자화상이 눈에 띈다. 한지 위에 분채를 한 것으로 작가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고 뒤쪽 배경으로 92년도에 어머니를 그린 작품이 보인다.
올해 한국 나이로 80세가 된 작가는 2015년부터 채색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작업방식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인상적이다.
윤석남 작가는 "도전정신이라기보다는 변덕이 심한 것이다. 좋아하는 거를 몇 년 하면 질려버린다" 며 "질려 하는 것을 그만두는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찾았다. 지금은 채색화를 더 잘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전통의 민화에서 채색화의 가능성을 봤다. 힘들고 가난하고 우그러진 우리의 삶 속에서 민화에 담긴 꿈을 본 것이다.
"물고기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있을 수가 있습니까? 얼마나 자유스러운 표현인가! 조선 시대 때 억압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꿈이 없었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채색화에 빠졌다."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역사속의 인물을 작품속에 끌어온, 조선 시대 기생이었던 매창(梅窓, 1573~1610)의 초상화도 흥미롭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다소 과장된 눈과 코가 특징이다.
"매창을 상상해서 그렸다. 450년 전에 살았던 시인이면서 기생이지만 38세에 굶어 죽다시피 했다. 이분 작품을 일생을 연구하면서 앞으로는 여러 번 (초상화를) 해볼 거고 처음 초상화를 그렸다."
어머니, 자매, 딸로 구성된 '우리는 모계가족' 작품은 채색화 2점과 나무로 만든 조각작품 1점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아들 셋, 딸 셋인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우연히도 어머니와 딸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됐고, 거기에 작가의 딸을 더 해 총 4명으로 된 '모계 초상'을 완성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게 어머니다. 단순히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라 조선 시대 때 여성들의 삶을 한몸에 가지고 계신 듯한 분이셨다. 자기도 굶으면서 거지가 지나가면 불러서 먹을 것을 줬다."
작가의 어머니는 95세의 나이로 1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막내가 2살 때인 39세 나이에 작고했다. 어머니는 6남매를 혼자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계가족' 조각 작품은 회화 작품을 그대로 소나무를 이용한 부조로 표현했다.
소나무의 결과 채색이 만나 색다른 느낌을 준다.
"미국 유학 다녀온 다음에 그림이 꼭 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튀어나와 전시장 한가운데 서 있을 수도 있구나 해서, 이렇게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나무 조각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한 층을 가득 매운 '핑크룸5'
전시장 지하 2층에 들어서면 '핑크룸5' 설치 작품이 방 전체를 분홍빛으로 채우고 있다.
벽면은 온통 분홍색 종이를 오려 붙여 놨고, 바닥에도 분홍 구슬 깔려있다. 중앙에는 분홍색 3인용 소파에 반쯤 잘린 여인의 초상이 분홍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핑크룸'은 1996년에 작가가 57세 때 처음 만든 작품으로 이번 작품이 다섯 번째 버전이다.
"40세에 그림 시작하고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워서 어머니 얘기를 꾸준히 해왔다. 50세가 넘고 내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핑크룸을 했다."
핑크가 여성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색이지만, 작품은 전부 형광 핑크이다. 작가는 형광 핑크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날카롭고 불안한 것을 표현했다.
"40대에 그림을 시작한 것은 나의 여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유 모를 불안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그 당시 중산층이고 경제적인 걱정은 하나도 없었고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한데, 굉장히 불안하고 말할 수 없이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 그때의 모습을 핑크룸에 형상화했다."
작가의 불안은 작품에 그대로 투영 됐다.
소파 다리는 뾰족하게 새의 발톱처럼 나와 있고 한복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다. 한복과 서양식 소파는 굉장히 상반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때의 혼란을 잘 나타낸다.
"아름다운 한복을 입은 나를 발톱으로 묶는 느낌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은 의자 위에 쇠가 막 기어 나오는 것도 있지만 이번 버전에는 빠졌다. 의자의 쇠가 내면의 욕망이라면 발톱은 주변의 환경적인 것이다."
그의 자화상은 초상화를 위한 과정이다. "친구 30명을 선정해서 초상화 전시하고 싶다"고 말한 그의 다음 전시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