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중·러·일 3국이 활발한 외교전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미 견제를 위해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전쟁의 새 타깃으로 거론된 일본이 중국에 한발 다가서는 등 3국 정상 간의 수 싸움이 한창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4회 동방경제포럼(EEF)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인 중국과 러시아, 일본 정상 간의 연쇄 회담이 이뤄지고 있다.
12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회담이다.
중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석한 시 주석은 "동방경제포럼은 각국이 지혜를 모으고 역내 협력을 모색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고 덕담을 건넸고, 푸틴 대통령도 "시 주석의 참석을 열렬하게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양국은 경제·군사적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등 미국을 겨냥한 밀착 행보를 지속했다.
시 주석은 "중·러 협력은 대국 관계, 이웃 관계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고 자평한 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비롯해 에너지·농업·과학기술·금융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이 정치·경제·안보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일대일로 사업의 접목, 민간·지방정부 간 교류 확대를 기대한다"고 거들었다.
중국은 전날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보스토크(동방) 2018' 군사 훈련에도 함께 참여한다. 러시아는 전체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0만명을 동원했고, 중국도 인민해방군 3200명과 전투기·헬기 등의 장비를 파견했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군사 훈련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에 맞선 대응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핵 해결의 중대 요소는 북·미 관계 정상화"라면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로드맵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의 정치·외교적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북한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한반도 내에서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에 일본도 끼어들었다.
포럼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러시아와 긴밀하게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북 경제 협력을 위해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얻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비핵화 과정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중·러 "일방주의 반대", 일본 입장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접어든 뒤부터 시 주석은 외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일방주의·보호무역주의 반대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 주석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주요 신흥국으로 세계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추구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에 따라 일방주의와 보호주역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한다"며 "신형 국제 관계와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도 "최근 국제 이슈와 관련해 많은 부분에서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며 "일방주의를 단호히 막아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 질서를 수호하고 공동 번영을 이뤄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일본 역시 미국과의 무역 마찰이 '발등의 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과 협상을 하지 않은 것은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정반대"라며 압박을 가했다.
688억 달러(약 77조30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완화되지 않으면 일본을 상대로 실력 행사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며 미국의 의중을 살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 사업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의 핵심 국정 어젠다로 꼽힌다.
중·일 양국은 이달 중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관련 협력을 위한 민·관 합동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기업이 제3국 인프라 사업에 공동 참여하는 방안 등의 논의될 전망이다.
아울러 아베 총리는 중·일 평화우호조역 발효 40주년이 되는 다음달 23일 방중할 계획이며, 시 주석의 방일도 지속적으로 요청 중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동방경제포럼을 무대로 동북아 강국인 중·러·일 3국 간 외교전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무역전쟁 등의 현안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행보에 어떻게 대응할 지가 주된 과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