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미 무역전쟁 대응전략이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폭탄관세 공세에 전면적인 보복으로 맞섰던 중국이 미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다시 구애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이같은 변화가 무역전쟁이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은 류 부총리가 "우리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보복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 기업을 얼마나 의식하는지는 미국 정유사 엑손모빌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7일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났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장면이 중국 전역에 국영TV로 방영됐을 정도다. 엑손모빌은 중국 광둥성에서 10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시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외국 기업의 단일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중국이 이를 지원하는 건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을 개방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번 주말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블랙스톤을 비롯한 월가 금융대기업의 고위 임원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 중국 관리는 "어려움은 있지만, 모든 게 정상"이라는 게 왕 부주석이 이들에게 전할 메시지라고 귀띔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중국은 강경한 입장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폭탄관세에 똑같은 보복으로 대응했다. 왕 부주석은 당시 미국 기업 수장들에게 기업들이 희생을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미국에 대한 보복을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의 입장이 유연해진 건 무역마찰이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미래에 절실한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중국 관리들은 전했다.
윌리엄 자리트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그들(중국)이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이지 않는 게 이치에 맞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의 연간 대중 직접투자 규모는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많은 투자가 핵심 부문에 몰리고 있다. 반도체엔 인텔, 항공 산업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투자하는 식이다. 일련의 투자는 중국 기업의 기술 및 경영 노하우 개선에 도움을 준다. 더욱이 중국이 미국 주요 기업을 보복 표적으로 삼으면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중국이 대미 무역 보복을 포기한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간 2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로 폭탄관세를 물리겠다고 하자, 중국은 연간 600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보복관세가 부과되면 연간 1100억 달러어치, 중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제품의 85%가 대상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연간 267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도 폭탄관세를 물리겠다며 중국을 압박했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사실상 모든 제품에 폭탄관세를 물리겠다는 말이다.
미국의 공세에도 중국이 유연한 태도로 돌아선 건 보복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보복은 미국의 협상 재개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성과가 거의 없었다. 미국은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과는 무역전쟁 휴전을 꾀하면서도 중국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시장이 절실한 미국 기업들을 통한 우회적인 트럼프 압박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이 상대적으로 적어 트럼프 행정부의 폭탄관세 공세에 똑같이 맞서기 어렵다. 트럼프의 2000억 달러 폭탄관세에 600억 달러에 불과한 보복 카드를 내민 이유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 밖으로 생산거점을 옮길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중국 상무부 관리들은 최근 미국의 일부 기술 대기업들이 미·중 무역갈등이 연말까지 계속되면,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부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폭탄관세 영향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통해 미국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