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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산성 성벽 절개부[사진=용인시 제공]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선장산(할미산)에 석축으로 조성된 ‘용인 할미산성’이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용인시는 한국문화유산연구원과 지난 2011~2016년 5회에 걸쳐 진행한 할미산성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유물 대부분이 6세기 전반·중후반의 것이며 7세기 이후 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고 7일 밝혔다.
할미산성은 포곡읍 마성리 산41번지 일원에 길이 651m의 테뫼식(봉우리에 테를 두르는 형식)으로 축조됐다. 6~7세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정과 경로를 밝힐 수 있는 가치가 인정돼 2007년 경기도 기념물 2015호로 지정됐다(지정면적 7만3504㎡ ) 이에 시는 2009년 할미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세우고 2011~2016년 5차례에 걸쳐 총 19억원을 투입해 1만6550㎡를 발굴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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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산성 팔각 건물지 전경[사진=용인시 제공]
발굴조사 결과 할미산성 내부에서 집터에 해당하는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 63기를 비롯해 △원형 수혈유구 42기 △팔각형‧장방형 건물지 9기 △대형 집수시설 △물길이 있는 수구지 △흙바닥 저장공간인 토광 등이 확인됐다. 또 고배(高杯, 높은 잔) 개(蓋, 뚜껑) 철촉 철부(鐵斧도끼) 방추차(紡錘車가락바퀴)등의 신라 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초기에 해당하는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할미산성으로부터 서쪽으로 2㎞ 떨어진 보정동 고분군(사적 제500호)의 신라 석실분 조성시기와 일치해 신라가 세력 확장시기에 할미산성 일원을 매우 중요시 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팔각형 건물지 3기가 할미산성 내부의 중앙부를 따라 배치돼 제의적 기능이 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군사적 기능을 기본으로 행정적 치소의 기능이 있던 한강유역의 다른 산성들과는 차이가 난다. 또 성벽의 둘레가 651m로 다른 산성에 비해 작지만 수혈주거지 63기와 대형 집수시설 2기 등 유구들이 밀집된 것으로 나타나, 지형 상 대규모의 성곽을 세울 수 없었지만 전략적 가치는 높았던 것으로 평가했다.
시는 이 같은 발굴조사 성과를 담은 ‘용인 할미산성 발굴조사 도록’ 500부를 발간했다. 도록은 ‘용인 할미산성 6년의 기록, 그리고 사람들’을 부제로 국배판(23㎝x30㎝) 270쪽 분량으로 사진 395컷을 담았다.
이 도록은 용인시 내 유적 발굴과 관련한 최초의 사진자료집이다. 시는 도서관 박물관 공공청사 등에 배부하고,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향토자료란에 게재해 상시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할미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확인된 만큼 국가 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성벽 복원과 탐방로 조성 등 단계별로 유적정비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