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3000만 모은 영화의 묵직한 울림, 총리도 움직였다

2018-07-1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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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中 총리,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 언급

"환자·가족 부담 줄여야" 신속한 정책 추진 지시

암환자·약값 폭증, 실제 주인공 "여전히 인도 약"

3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포스터(왼쪽)와 리커창 총리가 한 병원을 방문해 약값 청구서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바이두·중국정부망 ]


비싼 약값에 신음하는 암 환자들을 소재로 중국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고발한 영화 때문에 여론이 들끓자 결국 총리까지 나섰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관객 수 30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둔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我不是藥神)'를 언급하며 서민들의 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18일 중국정부망에 따르면 리 총리는 관련 부처에 신속한 정책 수립 및 집행을 지시하며 "암 등 중증 질환자가 돈이 없어 약을 못 사는 현실에 대한 호소는 약값 인하와 물량 확보의 시급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일단 중증 질환자가 발생하면 온 가족이 전 재산을 내놔야 한다"며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화 바탕 스토리, 중국 사회 '들썩'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이날까지 2818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번주 중으로 3000만명 돌파가 유력한 상황이다.

티켓 판매 수입은 26억 위안(약 4400억원)으로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단순히 흥행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중증 질환자들이 약값 부담 때문에 궁지로 몰리고 제약회사들만 배를 불리는 현실을 고발해 중국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화에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주인공은 골수암 환자의 부탁으로 돈을 받고 인도산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복제약)을 들여온다.

운 좋게 복제약의 중국 판권까지 확보한 주인공은 떼돈을 벌다가 경찰과 제약업계의 압박에 판권을 다른 이에게 넘긴다.

결국 복제약 판매가 중단되고 처음 약을 구해 달라던 환자는 약값을 대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다. 이 소식을 접한 주인공은 복제약 판매를 재개했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게 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백혈병 환자 루융(陸勇)은 인도산 복제약을 복용하다가 비슷한 처지의 다른 환자들을 위해 약을 대신 사줬다.

루씨는 2013년 체포됐지만 환자들의 탄원으로 검찰이 기소를 취하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골수암 치료제 글리벡의 출시 소식이 담긴 미국 타임지 표지(왼쪽)와 글리벡의 인도산 복제약인 비낫(VEENAT). [사진=바이두]


◆항암제 시장 25조, 비싸고 없어서 못 구해

영화에 등장하는 항암제의 오리지널 약은 글로벌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글리벡이다. 미국 타임지가 암과의 전쟁에 새로운 탄약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던 약이다.

인도산 복제약은 나코(NATCO)사의 비낫(VEENAT)이다. 약값이 글리벡의 40분의 1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암 환자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다. 중국 국가암센터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2015년 기준 암 환자 수는 430만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보다 65% 급증했다.

위암의 경우 신규 발병자의 47%가 중국인일 정도다. 중국 암 환자의 사망률은 60%를 웃돈다. 항암제 시장 규모는 1500억 위안(약 25조3000억원)에 달한다. 연평균 23%씩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제약업계의 항암제 개발 역량이 부족해 수입산 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수입 문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결과도 인정하지 않는다. 임상실험까지 6~7단계를 거쳐야 시판할 수 있다.

복제약은 '가짜약' 취급을 받는다. 판매가 허용된 복제약은 극소수다. 가격은 둘째 치고 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4월 리 총리가 항암제를 생산·판매하는 한 외국계 제약회사를 시찰하며 "암은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최고의 자객'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리 총리는 이 제약회사 관계자들에게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구매할 수 있다"며 "암 등 중증 질환 치료에 쓰이는 의약품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달라"고 주문했다.

◆수입산 항암제 과세율 '0', 정부도 동분서주

중국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무원 상무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5월 1일부터 새로운 의약품 관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우선 수입산 항암제에 붙던 5%의 관세가 사라졌다. 부가가치세도 기존 17%에서 3% 수준으로 대폭 낮아졌다. 일부 항암제는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심사 절차도 간소화했다. 임상실험의 경우 만기묵인제(到期默認制·당국의 비준을 받지 않아도 묵인 하에 실험을 진행하는 방식)를 도입키로 했다.

선진국 제약회사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신약의 경우 5년 동안 동일한 의약품을 중국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리 총리는 "국무원이 확정한 관련 조치가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독려했다. 이어 "세율을 낮췄는데 가격 인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중이 실제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가격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당사자인 루씨는 "이제 나에게 약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참 좋은 현상"이라며 "중국에서도 글리벡의 복제약 생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루씨는 여전히 인도산 복제약을 복용한다. 그는 "당초 수만 위안이었던 약값이 이제는 1000위안 안팎으로 낮아졌다"면서도 "내가 인도산 복제약을 계속 먹는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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