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 거리에서 만난 러시안 연주자
폭염이 사납던 어제(7.16) 저녁나절, 서울 인사동에서 특별한 지인과 막걸리 한잔을 마신 뒤 돌아오던 길에서, 한 연주자를 만났습니다.
짙은 색 노란 머리를 군데군데 새끼처럼 꼬아 늘어뜨린 더부룩한 행색, 그러나 얼굴에는 고결한 빛이 흐르고 눈매가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남자는 자주색 슬리퍼를 길 위에 벗고 가부좌 스타일로 앉아서 어떤 악기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앞에 놓인 천 가방에는 지폐 몇 장이 들어가 있었고요. 인사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일지 모릅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톤(나이는 묻지 못했습니다만, 30대쯤 되어보이는 젊은 얼굴이었습니다)은 곁에 있는 사람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선율과 리듬에 도취한 듯 끝없이 비행접시처럼 생긴 타악기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악기에선 마치 분수가 끝없이 솟아오르는 듯한, 그리고 간간이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듯한 청아하고 구슬픈 소리가 났습니다.
이 악기는 2000년에 새롭게 생겨난 행(Hang)이라는 타악기로, 스위스 베른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펠릭스 로너와 사비나 슈러, 두 사람(팬아트회사의 기술자)이 30년간 강철팬을 튜닝한 끝에 악기로 만들어냈다네요.
이 UFO 같은 악기를 핸드팬이라고 부른 건 2007년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인 판테온스틸의 카일 콕스입니다. 국내에서는 진성은(32)씨가 원조 연주자라고 합니다.
# 1000만원짜리 악기?
길거리 악사가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이 악기의 가격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닙니다. 일일이 수제작으로 만드는 악기인지라, 비싼 건 1000만원대를 훌쩍 넘고 대개는 모두 200만원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됩니다.
신비하고 정갈한 소리는 사람을 사로잡고, 단조로운 리듬 속에 스며드는 깊은 우수와 낭만적 서정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붙어앉아 그 음악을 혼자 듣고 있었습니다.
이상국 아주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