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그런 틈새를 놓칠 리도 없다. 전통적으로 북은 등거리외교에 능하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1960년대 중·소(中蘇) 분쟁 때 양국 사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실익을 챙겼다. 이제는 손자가 뒤를 이을 참이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6월 12일)을 전후해 3개월여 만에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을 만났다. 실로 담대한 외교 행보였다. 그런 그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는 “훌륭한 성품을 지닌 똑똑한 지도자”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제 곧 우리는 김정은을 두고 벌어질 미·중 간 치열한 구애(求愛) 경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평창올림픽에서 시작된 ‘평화 오디세이’의 총 연출자는 선의의 중재자(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었지만 주연배우는 김정은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지적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로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은 구애의 대상이 되고 피해자는 이중으로 고통 받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역시 ‘핵의 힘’인가, 아니면 중국의 급부상으로 달라진 안보환경 속에서 노정되는 한·미동맹의 한계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그의 설명이 이랬다. “외무상을 지낸 김영남은 한 살 아래인 허담(許錟·1991년 사망)과 함께 북한외교의 1세대로 60년 이상 이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남전략도 꿰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종전선언을 들고 나온 건 그 정도의 경륜이 없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참신하게 들렸다. 우리는 김정은의 숨은 진짜 브레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북을 상대해온 건 아닌지 자괴감도 들었다. 적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사람도 바뀌는 우리와는 다른 건 분명했다. 북한 연구의 새로운 착안점으로 비쳐졌다.
종전선언 요구는 북한으로선 신의 한 수였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대북제재를 할 명분이 사라진다. 제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동시에 남한으로부터 본격적인 경제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북은 체제보장(평화협정 체결)의 중간단계로 이를 들고 나왔지만 노리는 건 다른 데 있다. 북으로선 ‘종전선언’이라고 적힌 한 장의 종이로 정말 많은 걸 얻어낼 수 있다. 제재를 무력화하고,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흔히 트럼프를 ‘장사꾼’이라고 하는데 북은 이보다 몇 수 위다. 대남 일꾼들의 경륜과 일관성, 집요함 덕분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굳이 종전선언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전 당사국이었던 미·중이 이미 수교했고, 남북은 1992년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화해 협력과 상호 불가침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역시 이쪽이든 저쪽이든 끊임없이 ‘카드’를 만들어가는 게임임을 실감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북한의 비핵화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긴 과정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았다. 제재가 (북한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대북관계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임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본다면, 문 대통령은 신뢰구축을 위한 선의의 정지작업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주의자(idealist)로서의 문 대통령의 면모가 드러난다. 해방공간에서 잠시 피었다가 미·소 냉전 속에 스러진 김구·김규식과, 한참을 건너뛰어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남북 교류, 포용, 대화, 중도의 정체성을 충실히 잇고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1차 대논쟁인 현실주의(realism)와 이상주의와의 경합에선 현실주의자가 판정승을 거뒀다고들 한다. 종전선언으로 첫발을 떼려는 문 대통령의 평화 오디세이가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간 상호불신, 밀당으로 집약되는 현실주의의 높은 파고를 타고 넘을 수 있을 것인가. 또 하나의 실험이 목하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