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물을 붓고 4분30초 후면 단단함(Al dente, 알단테), 5분이면 보통의 부드러움, 5분30초면 부드러운 면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편의점 기준 판매가 단돈 1600원인 농심 용기면 신제품 ‘토마토 스파게티’에 쓰인 제품설명이다.
농심은 ‘스파게티 맛 컵라면’이 아니라 ‘컵 용기에 스파게티 면을 담았다’는데 핵심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12일 김종준 제품마케팅실장(상무)를 만나 농심의 면 제품 영역확장과 간편식 시장 전망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컵라면 아닌 ‘컵에 담아낸 스파게티’
농심은 이번 토마토 스파게티를 출시하면서 처음으로 서양식 면 제품에 도전했다. 왜 하필 스파게티였을까? 이유를 묻자 김 상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을 이었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짜장면에 얽힌 자신만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짜장면은 특별한 날 먹던 외식 메뉴였다. 농심은 1980년대 초 짜장면에서부터 출발해 그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스파게티도 지금은 외식메뉴지만 누구나 부담 없이 먹는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비전이자 목표다.”
농심 ‘짜파게티’는 1984년 3월 첫 선을 보인이래 국내 짜장라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짜라짜짜 짜~파게티’란 중독성 있는 광고노래(CM송)와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란 카피는 몇 년이 지나도록 소비자 뇌리에 박혀 있을 정도다. 주말에 앞치마를 두르고 짜파게티를 끓이는 아빠, 가족에게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아들의 모습 등을 광고에 담아낸 것도 주효했다. 짜파게티는 주말에 온 가족이 모여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한 한 끼 식사 대접을 받게 됐다.
김 상무는 이번 신제품 출시에 앞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사에 중점을 두고 가장 고민했다. 모두가 잘 아는 컵라면에 스파게티란 요소를 어떻게 잘 구현할까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학생도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1600원으로 가격대를 정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합리적인 가격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스파게티면을 용기에 적용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김 상무는 실제로 집에서 스파게티를 직접 조리해 먹어보며 제품 구상을 했다.
“물을 끓여서 면을 10분 정도 삶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간편하게 할 수 있을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려면 용기타입으로 하되, 5분 안에 먹을 수 있도록 해보자. 맛에 있어서 단순 재현 말고 농심만의 독창성도 넣어보자.”
김 상무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식품외식 분야가 아닌 중국 ‘샤오미’였다.
최근 샤오미는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 기대 수준에 부응하는 핵심 기능에 집중해 소위 말하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을 최대화 하면서 폭발적 성장을 했다. 또 하나는 일본의 아트 리디자인(Redesign) 프로젝트다.
김 상무는 “혁신적 독창성은 기묘한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익숙한 것을 새롭게 재해석 한 것에서도 올 수 있다. 샤오미와 리디자인 프로젝트 이 대표적 두 가지 사례로부터 간편식 농심토마토 스파게티는 익숙한 컵라면에서 즐기는 합리적 가격의 정통 파스타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라면-간편식 “경계 허문다”
농심 토마토 스파게티의 두 가지 핵심은 바로 1600원이란 가격대와 ‘듀럼밀(durum wheat)’이다.
듀럼밀은 실제 스파게티의 주 재료로 쓰인다. 밀가루 중에 가장 단단하면서 입자가 굵은 종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이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간 라면업계가 듀럼밀로 스파게티를 만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다. 면의 복원력과 대량생산 시설, 정교한 제면기술이 뒷받침해야 하는 문제를 농심은 해결했다.
“파스타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있게 즐기는 미식가 타입, 편하게 부담 없이 즐기는 간편식이 그것이다. 농심 토마토 스파게티의 핵심은 끓는 물에 5분이면 듀럼밀을 사용한 맛있는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농심은 단순히 다른 회사의 스파게티 라면이나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전자레인지 조리식 스파게티가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반 요리를 간단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과 별도 조리과정 없이 식사시간까지 줄인 ‘간편대용식(CMR)’을 아우르는 간편식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스파게티 맛을 다양화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면 간편식을 구성하는 다른 유형의 제품도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라면과 간편식을 구분하는 자체가 어불성설 이라고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농심이 이번 신제품 출시에 용기 형태를 선택한 이유도 스파게티를 가장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면과 소스를 조리해 그릇에 담는 번거로움을 농심의 제면기술과 포장기술로 간편화했다.
최근 편의점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용기면 트렌드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제품 출시의 기본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김 상무는 “농심은 우수한 제면 기술력으로 만든 고품질의 제품으로 면 간편식 시장에서 농심만의 경쟁력을 구축하고자 한다. 기존 HMR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온제품, 냉장제품 등 여러 면 간편식 제품들이 주요 경쟁 대상이다. 특히 1000원대라는 따라올 수 없는 가성비를 바탕으로 경쟁우위를 가져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실 가정간편식의 범주는 넓고 모호하다. 가정식을 대체한다는 의미에서는 라면도 일부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가정간편식의 의미는 밥이나 국탕류, 반찬류 등 기존 가정식(집밥)을 직접 대체할 반조리 식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HMR 시장 제품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본다. 농심은 이 같은 간편식 시장에서 면 제품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면과 간편식의 경계를 허무는 발상의 전환으로 소비자 타깃도 폭 넓게 확대됐다. 김 상무는 “특히 이번 토마토스파게티의 저렴한 가격과 조리 편의성은 다른 간편식 제품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으로 꼽히는 요소”라며 “기존 간편식은 1인 가구나 주부 등이 주 타깃이지만, 농심 스파게티 토마토는 10대부터 20대까지 품을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실제 스파게티 면을 사용한 토마토 스파게티와 같은 제품은 국내에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농심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통해 장기적으로 2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세계 면 요리를 식탁 위로···글로벌 농심
“세계 면 요리, 어디까지 먹어봤습니까? 우리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다양한 면요리를 식탁에서 다양하고 편하게 먹을 수 없을까. 세계 면 요리를 간편하고 합리적 가격에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김 상무는 간편식 제품에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번 스파게티의 경우 본래 메뉴와의 적합성, 두 번째가 간편성이다. 그가 말하는 간편성이란 단순히 제품을 먹을 때 간편함 뿐만 아니라 조리과정부터 활용성, 폐기할 때까지 소비자 경험 전반에 걸쳐서 편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농심은 앞으로도 전문 분야인 면류 제조 기술을 활용해 간편식 시장 트렌드에 대응할 계획이다.
특히 건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면 간편식 시장에 집중한다. 스파게티 토마토를 비롯해 앞으로 세계적인 면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농심의 전략이다. 이번 신제품 스파게티 토마토 이후 오일과 크림 스파게티도 개발 계획 중이다.
김 상무는 “단순히 HMR 시장을 공략하는 간편식 개발 계획보다, 본연의 (면류) 연구개발력을 중심으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신라면블랙사발’과 같은 전자레인지 조리용 제품이나 이번 스파게티 토마토 같은 제품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건면시장은 성장세다. 2013년 742억원에서 2016년 931억원, 지난해 1166억원으로 비로소 1000억원대 규모를 돌파했다. 농심은 2017년 건면 시장에서 552억원 매출을 올려 절반 이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체 면 시장에서 기름에 튀긴 유탕면 대비 건면 매출 비중은 82% 대 18%다. 한국의 건면 비중은 5.5% 수준이며,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김 상무는 보고 있다.
농심은 2007년 건면 전용 생산공장인 녹산공장 가동을 시작한 이래로 둥지냉면, 후루룩국수, 건면새우탕, 스파게티 토마토 등 다양한 건면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국내 건면시장을 이끌고 있다.
김 상무는 “건면기술을 활용해 세계인이 즐겨먹는 다양한 면요리를 모티브로 한 제품 개발에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며 “맛과 간편성을 갖춘 제품으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으며, 2020년까지 건면매출을 지금의 2배 수준인 1000억원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수시장에선 우수한 신제품으로 소비자 기호를 넓히는 데 주력하는 한편 해외시장에서는 농심의 인기 제품의 수출을 확대해나가는 게 당면과제이자 전략이다. 농심의 새로운 성장 동력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단순 제품 자체가 아니라, 농심의 연구개발(R&D)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외시장 확대가 글로벌 농심이 추구하는 성장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HMR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라면시장이 축소된다고 단정 지어 생각하진 않는다. 국내 라면시장은 매년 2조원 안팎으로 유지되는데, 이 중 용기면과 건면 등의 제품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농심은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라면 등 라면시장 주요 제품들은 해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수출이 늘고 있다. 지난해 농심은 해외에서 6억4500만 달러(약 7263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한편 김종준 농심 제품마케팅실장은 서울대학교 농생물학 학사와 동대학원 농생물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농심 연구소로 입사했다. 제품·소재개발과 연구개발(R&D)기획팀장, 농심 스낵·간편식 사업 책임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