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슈퍼루키’ 박성현(25)은 숨고르기를 하다가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1승을 더 추가한 박성현은 신인상, 상금왕, 올해의 선수 등 '신인 3관왕'을 석권하며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올해 투어 2년차를 맞은 박성현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그러나 박성현에게는 없을 것 같았던 지독한 ‘2년차 징크스’가 찾아왔다. 5월 텍사스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컷 탈락을 다섯 차례나 하는 등 들쭉날쭉한 경기력 탓에 긴 부진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성현을 향한 실망의 목소리도 커졌다.
‘약속의 7월’이었다.
2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이 대회에서 박성현은 2차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지난해 ‘올해의 선수’ 공동수상을 차지한 유소연을 꺾고 극적인 우승을 이뤄냈다. 최종 4라운드에서 선두 유소연에 4타 뒤진 3위로 출발한 박성현은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아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공동 선두에 올랐다. 유소연,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1차 연장에 돌입한 박성현은 유소연과 나란히 버디를 잡아 하타오카를 탈락시켰고, 2차 연장에서 다시 버디를 낚아 유소연을 누르고 생애 두 번째 ‘메이저 퀸’에 등극했다. 올 시즌 2승, 개인 통산 4승째다.
박성현은 2차 연장에서 까다로운 약 3m 우승 버디 퍼트를 성공한 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수많은 우승을 했지만, 이토록 감격적인 눈물을 흘린 모습은 낯설었다. 박성현은 이날 우승 직후 “오늘처럼 울컥하고, 마지막 퍼트 뒤 바로 눈물이 쏟아진 건 처음”이라며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기쁨에 못 이겨서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다. 이어 “올해 한 번 우승은 했지만, 컷 탈락을 다섯 번이나 하면서 힘들었는데 그 보상을 받는 듯해서 눈물이 났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날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결정적 승부처는 16번 홀(파4)이었다. 마치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맨발 샷’을 연상시킬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샷이었다. 유소연에 1타 뒤지던 박성현은 두 번째 샷이 그린에 못 미쳐 워터해저드로 향했다. 다행히 공은 물에 빠지지 않고 턱에 걸려 있었지만, 억세고 긴 풀에 매달려 위태로웠다. 공을 걷어내기조차 힘겨워 보였다. 박성현은 불안한 자세로 오른발을 물에 잠기듯 디딘 채 샷을 시도했고, 공은 그린 위 홀 바로 옆에 떨어졌다. 갤러리의 탄성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쥔 박성현의 다른 손에 들린 클럽 페이스에는 긴 풀이 어지럽게 감겨 있었다. 이 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한 박성현은 곧바로 17번 홀(파3)에서 유소연이 더블보기를 범해 연장 승부까지 갈 수 있었다. 박성현은 “그런 상황은 처음 겪었다. 벙커샷을 하듯 쳤는데 임팩트가 잘 됐다고 느꼈다”며 자신도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날 흘린 박성현의 눈물에는 그동안 마음고생도 머금고 있었다. 박성현은 “안 풀릴 때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까 봐 기사를 안 본 지도 오래됐다”며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한 뒤 “우승 트로피가 내 옆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고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박성현은 남다른 우승과 함께 예전의 ‘남달라’로 다시 돌아와 “기다림 속에 얻은 우승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우승이 될 것”이라고 우승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겼다. 다시 기지개를 켠 박성현의 시즌이 막 시작됐다. 꼭 작년 이맘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