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신비 절감 정책의 핵심인 보편요금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가운데 보편요금제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보편요금제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알뜰폰 업체와 학계에서는 보편요금제의 경제적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검토가 필요한다는 입장이다.
29일 아주경제신문과 박대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실 공동주최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2018 아주경제신문 IT입법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통신 생태계 변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 요금을 내면 음성 200분과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은 정부가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며 반발했고, 1년 가까이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보편요금제 법안은 지난 22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가 ‘보편요금제 도입과 요금 규제 개편 방향’을 주제로 발제자로 나섰다. 이후 펼쳐진 토론회는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황성욱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 전영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이용제도과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 정부·시민단체 “보편요금제, 통신시장 선순환 구조 만들것”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를 통해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고, 고가요금제와 저가요금제 이용자 간 혜택 차이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영수 과기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이동통신사들이 경쟁하는 부분은 주로 고가요금 구간에 집중돼 있다”며 “3만원대 저가요금제와 6만원대 요금제의 가격 차이는 두 배인데 데이터 제공량은 500배로, 이런 이용자 차별을 해소해 통신비 부담을 경감하자는 것이 보편요금제 도입 취지”라고 말했다.
전 과장은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의 저가요금제와 고가요금제의 혜택 차이가 크다”며 “저가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 적어 상위 요금제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이용량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시장에서 자발적인 경쟁이 일어나지 않자 법제도를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소비자단체도 정부의 취지에 공감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통신은 우리 생활에 밀착한 서비스다.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한지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이라며 “미세먼지, 폭염, 한파주의보 등 중요한 안내가 휴대폰으로 제공되고 있다. 보편요금제 도입 논의는 이런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사무총장은 보편요금제 도입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고 봤다. 보편요금제의 등장이 모든 요금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5G 상용화를 앞두고 이전 기술인 LTE 서비스 가격이 인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산·학계 “보편요금제 법제화 시기상조…알뜰폰·제4이통 키워야”
학계에서는 보편요금제 법제화보다는 정부와 사업자간 신뢰 회복과 협력을 기반으로 경쟁 활성화에 나서야한다는 데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김용희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보편적 요금제라는 자체가 유선통신처럼 모두를 위한 요금제인지, 일부 필요성에 국한된 것인지부터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장애인 및 고령자 등 취약계층 요금감면은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성과로 꼽히고 있는데, 그 수요와 보편요금제 수요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재원은 정부가 아닌 통신사와 통신 사용자가 부담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알뜰폰 활성화를 통해 유효경쟁 도구로서 활용 △완전 자급제와 분리공시제 시행 △정부의 인센티브를 통한 간접 개입 등 통신사의 자발적 경쟁을 유도하는 정부 차원의 모니터링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보편요금제가 실패로 끝난다면 더 이상 정부의 개입은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면서 “이통사들의 경쟁 강화 룰을 만든다거나, 제 4이통, 알뜰폰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을 제한하면서 가격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논리”라면서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오히려 한계기업의 퇴출을 가속화시켜, 소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인해 매출액 대비 고정비용이 상승한 이통사들도 2년 후 가격을 다시 책정했을 때 경영악화를 빌미로 규제가격을 올리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이동통신사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켜 미래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지난 1년간 보편요금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이해당사자 간 의견 검토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보편요금제가 국민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증거,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 대안으로 알뜰폰 활성화를 주장했다.
황성욱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은 “정부의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알뜰폰 사업자들은 가계통신비 인하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서 “최근에는 보편요금제보다 더 저렴한 서비스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뜰폰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2011년 도입된 사업으로, 지금까지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으로 가입자 750만명, 점유율 12%까지 성장해왔다. 그러나 보편요금제가 등장하면 가장 먼저 유탄을 맞는 것은 저가 요금제 중심의 알뜰폰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황 부회장은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알뜰폰 서비스를 확산시키기 위한 업계의 자생적 노력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지원도 요구했다.
황 부회장은 “알뜰폰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공동의 콜센터 운영, 가입절차 간소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노력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저가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네임도 공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알뜰폰 사업자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협상력이 낮은 알뜰폰을 위해 도매대가 인하·전파료 면제 등 정책적 지원을 높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