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 기간 약 20년의 터울을 두고 우리는 일본을, 중국은 우리의 모습을 닮아오고 있다는 전제에 대체로 수긍을 하였다. 산업화의 과정과 세 나라 국민들의 삶의 궤적에서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산업화에 있어서 경공업→중화학공업→IT→문화콘텐츠 등의 수순을 밟아왔다. 한 때는 3국 산업의 상호보완적 구조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플라이 체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최근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崛起)’로 인해 이러한 패턴이 고스란히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보완적이 아니고 살벌한 경쟁적 구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삶의 패턴도 마찬가지다. 기아 해결→웰빙→건강·다이어트→스포츠·레저 등 삶의 만족도를 높여가는 궤도를 따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글로벌화의 촉진으로 삶의 내용이나 질(質)이 ‘싱크로나이즈(synchronize)'되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특히 질적 측면에서는 우가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균등해졌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평가이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하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일본 산업계는 지난 1980년대부터 춘투(春鬪)가 정착되면서 매년 봄 노사 간의 임금 교섭과 관련한 다소의 잡음이 있긴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전투적인 모습으로 사생결단을 하는 우리 노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이를 노조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일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우리 기업의 투명성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하나는 허례허식과 흥청망청한 소비문화이다. 일본사람들은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결같이 분수를 지키고, 특히 공(公)과 사(私)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시적인 소비는 지양하고 항상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한다. 모(某) 정치인이 내건 ‘저녁이 있는 삶’도 단순히 저녁을 즐기자는 것이 아닌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인 ‘워라밸(Work-Life Balance)’로 이해되기는 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앞서가는 선진국들에게서 우리처럼 흥청망청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더 경제적이고 매사에 엄격하다.
종래의 가치가 아닌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中·日을 극복할 수 있다
중국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단순히 무섭게 추격해 오는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만 간주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라고 싶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중국은 우리를 더 이상 경쟁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따라잡았다는 것이 정확한 그들의 객관적 평가이다. 중국의 꿈과 목표는 우리가 넘보지 못하는 더 큰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산업 혹은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무수하게 목격된다.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감과 의욕이 너무 지나쳐 혹시 화(禍)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기업가 정신이나 개인의 창의력이 넘쳐나는 사회 구조로 변신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 증가와 고령화의 속도도 일본과 우리를 추월할 정도로 거세다. 이런 중국에 대해 20년 시차로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과거 잣대로만 중국을 재단하면 그들과의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도 없다.
우리 이웃인 중국과 일본을 제대로 조명해야 살 길이 보인다. 싫든 좋은 이들과 경쟁과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단지 무시하거나 두려워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들과 사이에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거대 시장을 지근에 두고 이념 혹은 감정적 대립을 극복하는 실사구시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 경제의 부활은 우리에겐 좋은 교훈이고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중국의 부상을 위기로만 보는 외눈박이에서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하는 곁눈박이가 되어야 한다. 유·불리를 분석하여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특화를 하는 것이 강한 상대의 틈새에서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러한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들을 종래의 가치가 아닌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의 접근은 필연적이다. 이제 20년 시차 공식은 유효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