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개최될 예정이던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돌연 연기하며, 현재의 성적표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등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한 본격적인 채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의 성장발판으로 불리는 혁신성장은 '가보지 않은 길'로 비유된다. 역대 정부는 그간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에는 못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혁신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혁신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통해 한국경제의 소득불균형, 일자리 미스매칭 등을 해결하는 데 올인했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는 2706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충격적인 고용실적에 따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혁신성장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6일 기재부 과장급 직원 워크숍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혁신성장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부총리 지시로 마련된 기재부 내 신설조직인 ‘혁신성장본부’는 이미 지난 20일 업무에 들어간 가운데 다음 주께 공식 출범식이 예고된다. 혁신성장본부는 △8대 선도과제1·2팀 △규제혁신·기업투자팀 △혁신창업팀 등 4개 팀으로 구성, 규제혁신 분야의 선두에서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데 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혁신성장 정책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핵심규제에 대한 공론화 및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
현재 기존 시장의 기득권자와 시장 진입을 원하는 신규사업자 간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원격진료를 비롯해 공유경제, 핀테크 등 사업에서 규제 혁신 여부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이는 고용시장과도 관계가 깊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신기술이 도입되고 규제가 완화되는 과정에서 로봇 등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 오히려 설익은 규제 혁신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일자리를 없애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높다.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부처 간 칸막이'로 대변되는 불통과 함께 실제 개별 정책 및 사업과 직결되는 규제 갈등은 정부 내에서도 쉽사리 깰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지적된다.
이렇다 보니 정부도 규제 혁신을 위한 공론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이해당사자의 견해가 중요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국민의 생각을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일종의 '공론화 플랫폼' 개념의 여론 수렴 과정도 예상된다.
한편에선 규제 혁신을 선두에 두고, 경제성장의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목표로 둔 혁신성장이 정부 주도로 추진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업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줘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른다. 해외 투자에 관심을 높이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당근책 마련도 요구된다.
또 혁신성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창업 분야에서도 스타트업의 생애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술력을 인정해주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가능한 생태계 조성 역시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혁신성장 실현을 위해 속도를 높인다 해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일이어서 갑자기 확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생태계를 조성하거나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신기술을 키우는 등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부분에서 혁신성장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역시 "혁신성장을 하려면 규제혁신이 돼야 하는데, 관련 법안 역시 여야 간 상충돼 국회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 보니 진행된 게 없다"며 "특히 기업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국민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정부 스스로 (기득권 차원의) 규제를 놓아주지 않는 게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