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리뷰] 후산부 동구씨는 순자랑 결혼했을까?

2018-06-11 15:00
  • 글자크기 설정

모든 후산부들을 위한 이야기

실화 바탕…탁상행정 비판

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소장(가운데)과 행정관들이 붕괴된 탄광 속 생존자 구조를 두고 머뭇거리는 모습과 구조를 기다리다 지친 광부(오른쪽)의 모습이 대조된다. [사진=노경조 기자]


광부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후산부(일이 서툴고 미흡한 광부) 동구씨는 무너진 탄광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순자)에게 편지를 쓴다. 곧 구조될 것이란 선산부 선배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며칠을 지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그 며칠이 너무 길다. 점차 산소보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고, 밭은 기침을 하던 선산부 규봉은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바깥에 있는 소장은 기다리라고만 한다. 서울에서 오신 높으신 분들이 어련히 구조하지 않겠냐며 되레 나무란다. 안타깝게도 높으신 분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극 중 동구씨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다. 걱정 말라는 선배들의 말을 무조건 따르다가도 스스로가 경각심을 느낀 순간에는 "이게 다 (소장한테) 괜찮다고만 말하는 만복 성님 때문이다"라고 대든다. 그리고는 제풀에 지친다.

만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순자의 아버지다. 장인어른이 될, 그래서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다. 몰래 쓰던 연애편지가 걸렸을 땐 "장인어른"이라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소리를 지를 정도면 닥친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동구씨의 심리 변화와 함께 '책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임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집 또는 학교에서 배우는 몇 가지 덕목 중 하나다. 정직, 성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책임의 형태나 성질이 변질되는 것을 느낀다. 일단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면 찾지 않는다. 유리할 때는 '내 덕분'이란 말로 포장된다.

소장과 소방청장, 그리고 서울에서 오신 높으신 분들이 이렇듯 변질된 책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결국 동구씨마저 입맛대로 바꿔놓는다.

노후화된 광산의 작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를 죽은 만복의 잘못으로 덮어버린 것. 동구씨가 언론에 직접 말한다. 만복은 억울해도 억울하다 말할 수 없다. 혹시나 기대했던 '권선징악'은 없다.

이 장면을 두고 연출가 황이선은 "작가님이 써주신 엔딩과 다르게 구성했다"며 "동구씨가 세상을 사는 데 있어 순수함이 파괴되고, 무엇을 담아가고 있을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한한 슬픔이나 분노에 놓여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바람에서다.
 

연극 '후산부, 동구씨'의 한 장면. 붕괴된 탄광 속에서 곧 구조될 것이란 기대를 안고 버티는 광부들. 선산부 선배들이 순자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동구씨(왼쪽 세번째)를 놀리고 있다. [사진=노경조 기자]


그럼에도 작품이 끝날 즈음 가슴이 먹먹하거나 화가 난다면, 그만큼 현실이 각박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실제 이 작품은 1967년 구봉광산 붕괴, 1982년 태백탄광 붕괴 등을 바탕으로 꾸며졌다. 여기에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입혀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향효과는 생동감을 더한다. 소악기를 사용했던 초연(2016년)과 달리 이번에는 악사의 역할이 커졌다. 장구, 꽹과리 등 사물이 적극 쓰인다. 국악 리듬을 이용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황 연출가는 전했다.

한편 울면서 거짓 인터뷰를 하던 동구씨는 연출과 작가의 의도대로 다시 일을 한다. 사실 '살아가다'보다 '살아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동구씨는 사랑하는 순자와 결혼했을까. 만복의 얼굴이 떠오르진 않았을까. 살아남은 동구씨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일이다.

'후산부, 동구씨'는 오는 22일까지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관람할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