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12일로 예정된 가운데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러시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주도권을 잡고 더 이상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했다며 러시아가 자국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여러 외교적 접근을 진행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김 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올해 9월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올해 북·러 수교 70주년을 기념해 연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 완화와 단계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북한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 합의를 적극 지지한다”며 “비핵화는 지나치게 서둘러 추진하는 것보다 협력과 상생을 통해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라브로프 장관을 평양에 보낸 것은 북핵 문제에 관한 러시아의 관심을 표명하고 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있는 북한에 자신들의 협상 노하우를 전수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또한 강력한 우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비핵화 단계에서 북·러간 공조 관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아 양국이 학술, 민간 등 각종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러시아 체제 전환으로 잠시 서먹해진 북·러 관계는 2000년 7월 평양에서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 정상회담으로 회복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2014년 11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특사 자격으로 보내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확보 의지는 최근 부쩍 늘어난 중국과의 협력에서도 엿볼 수 있다. 러시아는 9일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열린 상하이(上海)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가에 앞서 전날 중·러 정상회담도 개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과 반대되는 한 목소리를 낼 경우 이에 대한 외교적 파급력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러 양국이 공통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한·미·일과 북·중·러’ 구도로 상황을 몰아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