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미친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한 시점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벌집을 건드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재부와 청와대 간 미묘한 해석차 속에서 KDI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용시장에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없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으며 오히려 정부의 고용정책에 혼선을 부추긴 것은 아니냐는 비난만 키웠다.
KDI는 지난 4일 ‘KDI 포커스: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날 오전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배경설명에 나서며 “내년과 내후년에도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최저임금은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그 어느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 된다”며 “이러면 고용감소폭이 커지고 임금질서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시장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미국과 헝가리 상황을 사례로 들었다.
이를 비교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KDI는 임금근로자 고용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탄력성 값을 이용해 한국 고용감소 규모를 대략적으로 3만6000~8만4000명으로 추산했다.
단, 지난 4월까지 고용동향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추산치 수준도 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덧붙였다.
여기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맞춘다는 것을 가정해 2019년과 2020년 각각 15.3%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반영하게 되면, 고용 감소 규모가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씩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도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이 없는 경우를 단서조항으로 달았다.
이렇다보니 16.4%의 역대 최대 규모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반영됐지만 올 들어 영향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향후에는 이를 걱정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연구결과에서 단서조항으로 내건 국내 고용상황과 해외 사례 간극 상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5일(현지시간) “최저임금의 고용 효과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나라마다 (시장 구조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한 나라의 최저임금 고용 효과를 계산할 때 다른 나라의 사례 분석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내년도 일자리안정자금 편성 가능성을 예고한 상황에서 일자리안정자금을 배제한 연구결과를 내놨다는 데서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올 초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안정자금에 대해 “한 해만 지원하고 중단할 수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을 위해 내년에도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세 소상공인들 역시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에 나서면서 1년짜리 정책은 아니라는 데 공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연구보고서가 KDI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점에도 논란을 빚고 있다. KDI는 비정기적으로 KDI 포커스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서두에 ‘본 포커스의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본원의 공식 견해가 아님’이라는 문구를 기재해놓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 사이에서는 의견차가 극명한 사안에 대해 KDI가 발표를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공식 견해가 아닌, 연구위원의 사견으로 제한하고 발뺌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들린다.
한 민간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구 결과에 대한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공식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지만,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책임감 있는 연구보고서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안이 엄중한 만큼 주의를 기울여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하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분야 연구자는 “보고서 내용과 해명 등을 간추려보면 확정적인 내용이 없는데, 어떤 의미로 보고서를 발표했는지 의문만 남게 만든다”며 “취임한 지 얼마 안된 최정표 KDI 원장을 비롯해 KDI가 향후 신뢰성 회복 등에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KDI 관계자는 "최저임금과 관련, 해명이나 공식 입장을 낼 계획은 없다"고 전해왔다.
한편,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7일 오후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수현 사회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소득분배 관련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한다. 이번 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여부 등이 논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