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
미국은 당초 예고한 대로 500억 달러(약 53조5000억원) 규모의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에 25%의 초고율 관세 부과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행보라는 게 합리적인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노선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준 한 권의 책이 있다. 2011년 출간된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으로, 저자는 피터 나바로 전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 교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 책을 언급하며 "선명한 논점과 주밀한 연구 결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미국 근로자들이 입은 상처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고 극찬했다.
저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백악관에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을 맡았다가 현재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책의 요지는 간명하다. "부도덕한 중국 기업가들이 치명적인 상품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파괴하는 중이다. 아울러 중국은 불법적인 보호주의로 미국의 산업과 취업 기회를 약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연간 무역적자 8000억 달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40억 달러가 중국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불법적인 수출 보조와 불합리한 수입 관세 부과, 환율 조작, 짝퉁 생산, 지식재산권 침해,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제, 대규모 환경 오염 등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국가로 묘사된다.
중국에 맞서 미국 경제를 지켜낼 수 있는 해법도 담겨 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45% 관세 부과,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 저지, 지식재산권 및 사업 기밀 보호, 환율조작국 지정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수차례에 걸쳐 관세폭탄 투척 의지를 내비치며 대중 압박 수위를 높여 왔으며, ZTE에 대한 제재 등을 통해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억제하려 노력하고 있다.
'중국에 의한 죽음'을 열독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형성된 '중국관(中國觀)'이 바뀌지 않는 한 미·중 갈등이 완화하거나 무역전쟁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맞상대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나 '경제 사령탑'인 류허(劉鶴) 국무원 부총리는 이 책을 읽었을까.
단언하기 어렵지만, 현재 중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중국어 번역본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두 등 중국 대형 포털사이트에 책명을 검색해 찾은 간략한 소개 글의 대부분도 대만에서 작성된 것들이다. 중국의 한 대학 교수는 나바로 국장을 "악독한 중국 반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나바로 국장은 또 다른 저서인 '웅크린 호랑이·중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에서 "중국은 글로벌 경제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며 "제재와 국경 통제 등을 포함해 중국에 경제적으로 대항하고 필요하다면 군사적 조치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반중 감정이 이처럼 고조되고, 중국 정부가 철저한 검열을 통해 인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상황에 대해 중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자 출신의 작가인 웨이야화(魏雅華)는 온라인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중국에 의한 죽음'을 정말 읽어보고 싶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며 "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정녕 우리에게 유리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중국은 온화·겸양·포용·관대 등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며 국제사회의 기준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상대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는 것은 돈으로 살 수도, 요구해 얻어낼 수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