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출소 후 5일로 4개월째를 맞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국내 활동에는 나서지 않은 상태다. 최근 세 차례에 걸친 해외출장에서도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처럼 그룹의 ‘비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룹 최고라는 삼성전자도 위기 징후... 반도체 빼곤 하강 곡선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CE) 사업부문 주요 제품인 TV의 시장 점유율은 20.1%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21.4%)에 비해 1.3%포인트나 떨어졌다. TV 점유율은 2012년 이후 작년까지 6년 연속 20%대를 기록했지만 연초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올해는 7년 만에 10%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IT·모바일(IM) 사업부문의 주요 제품인 휴대전화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 1분기 점유율이 18.9%로, 1년 전(21.4%)보다 2.5%포인트 급락했다. 글로벌 선두 자리는 지켰지만 5년 전인 2013년 1분기(28.6%)와 비교하면 무려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셈으로, 이런 추세라면 올해까지 3년 연속 10%대 점유율 가능성이 크다.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사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주요 품목 가운데 점유율 추락 속도가 가장 빠르다. 2015년까지 20%를 웃돌았으나 2016년 17.1%, 지난해 14.8%로 떨어지더니 올해 1분기에는 작년 같은 기간(15.0%)보다 1.8%포인트 하락한 13.2%로 주저앉았다.
주력 반도체 제품인 D램은 올해 들어서도 40%대 중반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간 아성을 구축했던 4대 제품의 경우 최근 모두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부문”이라며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가동 절실, 정·재계 한목소리
이 같은 분위기에 삼성의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도 하루빨리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공정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삼성은 기존 미래전략실과 다른 새 그룹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며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으로 쪼개진 소(小)미전실 시스템으로는 삼성이라는 거대 그룹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공정위가 지난달 1일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을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성 계열사가 사익편취 금지 등의 규제를 위반했을 경우 법적 책임을 이 회장이 아닌 이 부회장에게 묻겠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의 의무가 강화된 만큼 그룹에 대한 책임성도 커진 것이다.
재계에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그룹의 총수로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같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라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그룹의 혁신을 채찍질한 바 있다. 이는 삼성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고, 결과적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 부회장 국내 경영 복귀 시기는 여전히 ‘미지수’
그러나 이 같은 정·재계의 요구에도 이 부회장이 언제 국내 경영에 복귀해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본인이 삼성전자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는 앞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돼 법정에 선 자리에서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님이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분이 되실 거라고 저 혼자 생각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론도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노조 와해 의혹과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논란, 재벌개혁 압박,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연일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최근 행보는 국내보다는 해외에 방점이 찍혀 있다”며 “하지만 그룹의 총수로서 국내 경영활동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삼성이 위기의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