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픈 건 잘 참으나 배고픈 건 못 참는다." <중국인(생래적 자본주의자?)>
2002년 쯤이던가, 주한 중국대사관의 고위외교관 L씨는 한 공식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고위 외교관 발언치고는 하도 거침없는 언사라서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라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바 있다.
중국은 길게 잡으면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정립했던 40년전, 짧게 잡아도 26년 전 남순강화(1992년 덩샤오핑의 동남부연해지역 순시) 적에, 이미 보혁 갈등, 좌우대립 따위의 이념 논쟁을 걷어치웠다. 개혁·개방과 부국강병을 위해 사회주의 독재정에서 자본주의 독재정으로 줄달음쳐왔다. 문화대혁명 때 문자 그대로 ‘자본주의를 향해 치달려가는 주자파(走資派)의 수괴로 숙청당했던 덩샤오핑. 그는 재집권 하자마자 ’우향우‘ 로 내달았다.
다만 덩의 후배 최고지도층 장쩌민(江澤民, 1926~)- 후진타오(胡錦濤, 1942~)- 시진핑(習近平, 1953~)은 실사구시 실천과정 중에 초고속 성장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쾌속 질주해 나갈 것이냐, 아니면 내실을 기하며 착실히 점진할 것이냐 하는, 즉 속도의 완급 조절에 지혜를 모으고 있다. 즉, 중국은 뒤뚱거리는 좌우의 프레임에서 돌파, 쾌속이냐 초쾌속이냐 속도의 완급차원으로 들어선지 이미 한 세대가 지났다.
중국말로 '셩이(生意)'는 인생의 의의, 즉 왜 사냐, 무엇 때문에 사느냐 따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다. 장사나 영업을 뜻한다. 중국인에게 삶의 뜻은 한마디로, 장사를 잘해서 잘 먹고 잘사는 현실적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중국 땅은 온통 시장이며 중국인은 모두 상인'이라는 것이다.
서구식 자본주의를 도입해 굳게 단련됐다며 자신만만하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중국인이 ‘자본주의적인,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사람들이란 것이다. 세계 최초로 지폐와 어음, 수표를 상용하고 상업광고를 했던 이들, 이미 3000년 전부터 세계 최초 계산기인 주판을 만들어 주판알을 튕겨 왔던 그들 앞에서 우리나라 자본주의 수 십년의 경험은 어쩌면 가소로운 것이리라.
'상인종(商人種)'의 나라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실험하였던 시기는 1949~1978년 딱 30년간뿐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일이다. 시진핑 시대 지금의 중국 땅은 온통 시장이고, 중국인은 모두 상인들이며, 중국 정부는 이름만 공산당 사회주의를 둘러쓴, 본질은 경제성장제일의 원조 자본주의 독재정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인의 잠들어 있던 본능을 일깨웠다. 그는 개혁·개방 자명종을 울려 중화민족 본성에 걸맞지 않는 사회주의계획경제 30년 긴 악몽에서 신음하던 비단장사 왕서방, 생래적 자본주의자를 깨어나게 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마오쩌둥 시대의 사회주의 독재정을 자본주의 독재정으로 이동시켰던 것이다.
덩샤오핑의 최후의 후계자이자 제3세대 영도핵심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확립한 정치국상무회의 과두 독재정을 계승하면서 경제정책을 ‘중국특색 신자유주의식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성사시키고 국내총생산액(GDP)를 세계 4위로 발전시키는 등 눈부신 경제발전 성과를 이루었다.
장쩌민의 동향 후배 제4세대 후진타오는 정치국 상무위원을 7인에서 9인으로 늘려 권력을 분산시키고, 집단지도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한편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주창하며 시장경제 정책을 심도있게 발전시켰다. 특히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미국식 자본주의가 시장실패 현상을 겪는 기간에도 중국의 GDP를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등극시키는 업적을 세웠다. 그의 집권기간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이른바 자본주의 세계 공생체,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의 영문 합성어)'로 불리는 G2(주요2개국)로서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했다.
제5세대 영도 핵심 시진핑은 2012년 11월 집권 이후 점차 집단지도체제를 탈피, 성역없는 부정부패 척결과 함께 1인 통치권력 강화에 주력해 왔다. 집권 2기 원년 2018년 3월 헌법을 개정, 국가주석 연임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공산당 영도원칙을 헌법에 명기하는 등 1인통치와 1당독재를 공고히 했다.
이 대목에서 일각에서는 시진핑이 헌법을 개정하여 '시 황제'로 등극했다며 마오쩌둥시대 사회주의로 회귀할 거라며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와 ‘독재’의 개념을 혼동한 인식의 오류다.
시진핑 2기 정치노선은 마오쩌둥 시대식 1인 독재로 역주행하는 경향이 있으나 경제노선은 여전히 중국식 자본주의를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 즉 지속가능한 성장시대 즉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와 중국판 마셜플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를 내세우며 창업과 기업경영의 효율 극대화를 추진하는 ‘중국특색 자본주의’ 대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진핑 시대 중국이 꿈꾸는 미래 모델은 어느 나라일까?
자본주의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지 40년인 G2 중국이 돌연 가난의 평등이 보장된 마오쩌둥 시대의 구사회주의 독재정 국가군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물론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군으로 급격히 '우상향'할 가능성도, 북유럽의 민주사회주의 국가군으로 급속히 '좌상향'할 가능성만큼 희박하다.
중국이 꿈꾸는 미래 국가모델은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중국계인 싱가포르만큼 알차고 풍요로우나 통제된, 싱가포르보다 1만 5000배나 거대한 자본주의 독재정 국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