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중 물류 자회사를 갖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는 LG(판토스), 현대차(글로비스), 삼성(SDS 물류·전자로지텍), 롯데(로지스틱스), 효성(트랜스월드), CJ(대한통운), 한화(한익스프레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2자 물류사들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물동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물동량 1540만TEU 가운데 2자 물류사의 물동량은 52%인 801만TEU에 달했다. 국적 선사의 경영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운업계는 일부 대기업들이 대규모 물량을 무기로 국적선사에 운임 인하를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유리한 쪽으로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본인들이 요구하는 운임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5년간 입찰 기회를 박탈당했다"면서 "만약 조건을 맞춰 개별협상이 진행됐어도 운임 인하가 성사되지 않았으면 계약은 파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입찰을 진행할 때 운임칸에 빨강(주의), 검정(탈락), 초록(통과) 식으로 표시해 운임 인하를 유도한다"며 "특히 선주와 화주가 운송계약을 체결할 때 운송기간과 물량, 운임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게 국제 관례인데, 이 것마저 수시로 조정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2자 물류사들은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회사를 급성장시킨 후 배당과 지분매각 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후계자가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 등이다.
그렇다고 2자 물류사들의 일감몰아주기를 단박에 해소되긴 힘들어 보인다. 일례로 LG범한판토스를 인수한 LG상사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하여서 계열사간 거래가 늘어도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여기에 전세계적인 해운업황 침체까지 겹치면서 국내 해운업 및 물류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들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전자회사 등 제조사들을 살펴봐도 우리나라와 같이 자체 물류 기업을 가지고 있는 데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원양 컨테이너선 기준 113만TEU까지 선복량을 늘리는 등 해운 재건을 목표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조선·철강 등 전후방 연관산업과 상생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내 화주들이 국적선사에 대한 적취율(우리나라 화물을 우리 선사에 싣는 것)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물류산업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법안 처리는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과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은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물량 수주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해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대기업 계열 물류사들이 모기업과 계열사 물량만 취급하도록 하고 3자 물량을 취급하는 것은 법으로 금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물류업계와 해운업계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일단 개정안 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김영무 선주협회 부회장은 "일본 선·화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통한 상생발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대기업들의 3자 물류 금지는 공정위 정책 기조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3월 열린 '제8회 마리타임 코리아 포럼'에서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3자 물류 금지 법안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해운법상 제도적으로 2자물류와 3자물류에 칸막이 쳐지는 것"이라며 "제도적으로 아예 별개의 시장이 된다는 것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