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주부 성공신화’로 유명세를 탔던 한경희. 그가 다시 돌아왔다.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하고 4월 초 재기에 나선 그의 한 달간 사업내용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1999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팀청소기’로 혜성같이 등장했던 그녀가 이번엔 ‘스팀다리미’로 주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는 어느새 지천명(知天命)의 50대 중반에 이르렀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는 지난 3월말 기업회생 졸업 직후 전략 발표회를 열고, 다시 독보적인 ‘스팀 기술’을 앞세운 사업 계획으로 제2도약을 선언했다. 한 대표는 신제품인 초고압 스팀다리미 ‘듀오스팀(GS-7000)’을 선보이며 자신의 ‘야심작’이라고 표현, 재기 발판의 승부수로 내세웠다.
4월 출시된 이 제품은 준비된 수량이 매진된데 이어 추가 수량까지 완판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현재는 재고 부족으로 2차 입고분까지 품절된 상태다. 이로 인해 3월대비 4월 매출은 약 170%나 상승했다.
과거 스팀청소기 출시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손걸레질 도중 떠올린 스팀청소기라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에 뛰어든 이후, 홈쇼핑에서 900만대 가량이 판매되는 대박을 쳤다. 특히 미국 홈쇼핑 채널 QVC에서 7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며, 매출도 급신장했다. 2004년 매출 150억원에 이어 2009년 975억원으로 엄청난 상승곡선을 그려냈다.
이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008년 11월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표한 ‘주목할 만한 여성기업인 50인’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대표적인 '여성벤처 신화', '기록 제조기' 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계속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한 대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예상치 못했던 악재를 만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신규사업 실패로 위기에 빠졌고, 경쟁제품들이 나오면서 스팀청소기가 정체기에 돌입했다. 음식물처리기, 전기프라이팬 등 신사업에서 잇달아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결국 2017년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하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2014년 120억원을 투자해 도전한 미국 진출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경영난은 가속화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 대표가 회사채를 발행한 뒤 8억원 가량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그동안 쌓았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1000억원에 가깝던 매출은 2004년 100억원대 시절로 돌아갔고, 직원 수도 절반으로 반토막 났다.
하지만 기업회생절차 돌입 4개월만인 지난 3월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하면서 재개의 신호탄을 쐈다.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와 드디어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이번 재기에 효자 노릇을 한 세탁소 성능의 초고압 스팀다리미 개발이 회생절차 조기종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경험한 그는 더욱 탄탄해진 경영 구상을 통해 올해 매출 목표를 500억~600억원으로 잡았다. 판매 전략에서도 직접적인 판매를 새롭게 도입, 렌탈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기로 했다. 유통채널 다각화를 위해 500여명의 전문 영업조직도 구축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스팀다리미 관리를 주기적으로 해주는 월 9000원대의 렌탈 방식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한 대표는 또다시 신사업에 진출한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그는 “스팀제품에만 집중하지 않고, 주방가전에서도 소비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깜짝 제품들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는 장기적인 구상도 밝혔다.
‘스팀=한경희’라는 브랜드 파워가 여전히 시장에서 긍정적이지만, 미투 제품이 많아진 데다 국내 렌탈시장이 포화 상태인 만큼 더욱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