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계부채 확대에 따른 위험을 경고할 일차적 책임은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구성된 감독기구에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금융위 책임이 컸죠."('비정상 경제회담' 162쪽)
고공 행진하는 가계부채부터 재벌의 사익 편취까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관료 사회’를 꼽았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를 두고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언급했듯, 윤 원장은 향후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현 금융감독체계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묶어 놓은 셈”
윤 원장은 ‘비정상 경제회담’에서 금감원이 지금처럼 금융위원회 아래에 묶여 있는 구조에서는 감독기구 본연의 기능인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가 금융 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모두 관장하는 상황 하에서는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는 감독 기능 작동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그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급증한 가계부채 문제 등을 사례로 들면서 감독기구가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윤 원장은 감독기구의 기능을 살리려면 금융위의 금융산업정책 업무는 기획재정부로 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새로운 감독기구는 건전성감독 기구와 소비자보호 기구로 나눠야 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금감원 검사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이려면 금감원 검사역의 전문성 강화와 함께 정년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일정한 성과요건을 만족시킨 금감원 시니어 검사역들에게, 마치 대학교수들처럼 정년을 보장해 퇴직 후 예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261쪽)는 생각을 밝혔다. 이렇게 하면 전관예우의 싹도 자르고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도 십분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에 대손상각이나 대손충당금을 증대하도록 요구해 대출 유인을 줄이거나 총량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가계부채 뇌관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꼽았다.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된 관료 사회…관치금융 만연
그는 ‘비정상 경제회담’에서 관료 사회가 집단이기주의에 취해 있다고 비판했다. 윤 원장은 책에서 “관료들이 (중략) 상당히 큰 권한을 가지고 특히 정책에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반해 책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출세, 집단 이기주의 또는 관료시스템 자체를 옹호하는 노력 등이 강화되면서 한마디로 국가가 아닌 사적인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283쪽)고 말했다.
다양한 관치금융 사례도 들었다. △금융개혁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빚내 집사라며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 △기촉법(기업 구조조정 촉진법)을 통해 기업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민간 금융회사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것 등이 대표적인 ‘관치금융’이라고 설명했다.
재벌 문제도 관치금융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료들이 정치적 입맛에 맞춰서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쪽으로 정책과 제도를 적당히 사용하는 상황이 우리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38쪽)고 비판했다. 동시에 “정부는 좀 더 철저히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재벌기업은 놔두고 오히려 내버려둬야 할 금융회사와 시장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다”(406쪽)고 밝혔다.
윤 원장은 금융시장에 경쟁의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핀테크 활성화와 관련해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면 도움은커녕 오히려 부담이다. 금융 자율화를 보장해주고 감독체계를 튼실하게 해놓고 마음껏 해보라 하면 한국 사람들이 워낙 재주가 많으니 금융과 기술을 엮어서 경쟁력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155쪽)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