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택 시인이 자신의 서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전북 임실 하면 많은 이가 '치즈'를 떠올리지만 사실 임실 하면 섬진강, 그리고 김용택 시인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임실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순창농림고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2008년 덕치초등학교에서 30년의 교사 생활을 마치면서 70 평생을 임실에서 살아온 김 시인에게 임실은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시적 영감을 얻는 공간이다.
지난 26일 방문한 김 시인의 집에서 서재는 그의 문학적 소양으로 가득 찬 곳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김용택 시인의 서재 [사진=정등용 기자]
김 시인의 독특한 취향은 만화책에 그치지 않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김 시인이 새벽마다 즐겨 보는 것은 해외축구리그 하이라이트 영상이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선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클럽 리버풀에서 활약 중인 모하메드 살라. 다만, 콥(Kop, 리버풀의 열성팬들)은 아니다.
아침마다 또 챙겨 보는 것은 신문이다. 7개의 신문을 꼬박꼬박 읽는다는 김 시인은 “사설을 꼭 본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문 읽기가 끝나면 김 시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동네 할머니들의 소리와 참새들의 지저귐, 자연 그 자체다. 김 시인은 “심심하면 모든 게 다 보인다. 엄청 많은 것들이 있다”면서 “자연이란 게 볼 때마다 완성돼 있고 볼 때마다 달라져 있어서 질리지 않는다. 아마 나무만큼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변에서 귀농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평소엔 강연을 다닌다. 주로 회사원이나 공무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지금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강연도 끊겼다. “경제적 손실이 막심하다”며 우는소리를 하던 김 시인은 ‘강변살이’ 이야기가 나오자 한 층 더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섬진강변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강변살이’는 귀농인들이 뭉쳐 만들었는데 마을을 가꾸는 일뿐 아니라 영화 이야기, 기타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시인은 “글쓰기 활동을 한 달에 두 번 정도 하는데 13~14명 정도가 참여한다. 문학 캠프에도 많은 분이 함께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젊은 신혼부부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노년층에서 귀농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원주민과의 갈등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김 시인은 “여기 강변살이는 귀농 정착이 잘 이뤄진 경우다. 사람들이 좋다”면서 “귀농인들이 처음엔 원주민들과 잘 지내지만 1년이 한계인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과 교양이다. 농촌에서 살다보면 자기 일과 주민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자기 일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섬진강변을 걷던 김용택 시인이 지나가던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강변살이’ 모임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데에는 구성원들의 건실함과 지적인 면이 중요했다는 게 김 시인의 생각이다. 그는 “다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지만 사회 문제에 민감하다. 세월호, 촛불집회 얘기도 많이 한다”고 모임의 활동을 설명했다.
대화의 내용이 사회 이슈에 이르자 김 시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소통이 힘이다. 국가의 힘이 없어져야 한다. 양극화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며 “시민들이 모여 나라를 움직여야 한다. 시민들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결국 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자본이 득세하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국가가 득세하면 통제가 강화된다”고 분석했다.

김용택 시인의 집에서 바라본 섬진강변의 모습 [사진=정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