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이혁 한-아세안 센터 사무총장 "서로에 대한 존중이 관계 발전의 밑거름"

2018-04-23 04:00
  • 글자크기 설정

"이익만 취하고자 하면 아세안 장기적 관계 맺을 수 없어"

"기술력ㆍ협력국 이미지 선호도 높아 中ㆍ日과 경쟁 가능"

올해 4월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아주경제 박세진 기자]


한국과 아세안을 잇는 대표적 가교(架橋) 역할을 해온 한-아세안센터가 새로운 수장을 맞았다. 16일 새로 센터를 이끌게된 이혁 사무총장은 동북아1과장, 중국 참사관, 아시아태평양국장, 일본 공사, 기획조정실장, 필리핀 대사, 베트남 대사 등을 역임한 '아시아 전문가'다. 

아주경제는 18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프레스센터 8층 한-아세안센터에서 이 사무총장을 만나 아세안-한국 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포부를 듣는 자리를 가졌다.
이 사무총장은 올해로 설립 9년 째를 맞이하는 한-아세안 센터는 아세안 전체에 대한 풍부한 자료와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기구라고 소개하면서, 필리핀과 베트남 등 주요 국가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좀더 실질적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단체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실질적 결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新) 남방정책의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이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존중'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한국이 아세안과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국을 존중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고 상대국의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아세안 국가들과의 상생은 불가능하다고 충고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최근 한국에서는 포스트 차이나로 아세안을 지목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한-아세안센터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취임 뒤에 어떤 분야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센터를 이끌 갈 지 궁금하다. 

" 한국 정부가 ‘신(新) 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 10개국과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외교 지평을 확대해나가는 가운데 한-아세안센터의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책임이 막중하다. 올해로 설립 9주년을 맞는 한-아세안센터는 국내 유일의 아세안 전담 국제기구로서 한국과 아세안 간 무역·투자 확대, 관광·문화교류 활성화, 인적교류 확대를 위해 연간 50-60개 사업들을 실시하고 있다.

한-아세안센터는 “번영을 공유”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connecting people)”하는 데 노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아직 아세안이 10개 국가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이를 다 아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아세안이라는 존재가 한국의 미래에 중요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알리고 홍보하도록 할 것이다. 

또 여러가지 행사를 열고 있는데, 그런 일들이 행사 자체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 할 계획이다. 또 아세안 관계 강화에 있어 정부, 기업,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역할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연결해주면서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 아세안을 상징하는 단어는 ‘잠재력’이다. 특히 2015년 12월 아세안 10개국이 단합해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공식 출범시키며, 역내 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EU와 같은 경제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는가? EU 역시 브렉시트 등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성장속도, 정치, 사회적 상황 탓에 앞으로 AEC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아세안 경제 공동체(AEC)는 EU처럼 단일통화를 도입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경제 통합을 가속화 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 사이의 관세는 거의 철폐되고 있는 추세다. 아세안 국가들 간의 교역 역시 나날이 늘고 있다. 아세안은 아세안 자체 인증, 아세안 무역 원활화 지표 개발, 서비스 교역 협정 체결, 경제 공동체 추진 현황 모니터링 등의 조치를 통해 경제 통합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EU에 비해서는 비교적 느슨한 통합을 이어가고 있지만, 연간 1,100개에 이르는 회의를 통해 합의와 협의를 바탕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을 통한 ‘느리지만 꾸준한’ 통합은 오히려 EU 방식보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2016년부터 베트남 대사를 2년간 맡았다. 최근 양국 간의 관계가 급격하게 밀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보나? 또 양국이 성공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과 베트남이 이룩한 협력관계는 가히 ‘한국·베트남 매직’이라고 불릴 만하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이 640억 달러였는데, 이는 아세안 10개국 전체와의 무역액인 1,500억 달러의 40%를 넘어서고, 무역수지도 10개국 교역으로 거둔 무역수지의 76%에 달한다. 인적·문화 교류도 활발해 한국에는 베트남 국민 15만 명이 살고 있고, 6만여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다.

베트남 대사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의와 올해 3월 국빈방문으로 두번이나 베트남을 방문했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박충건 감독이 사격에서, 올해는 박항서 감독이 축구에서 양국 간 친선 교류를 크게 끌어 올렸다. 이러한 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이 그만큼 한국과 기적 같은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국이 성공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국가를 존중하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전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 러시와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베트남 투자에 있어 한국 기업들이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2014년부터 베트남 해외투자국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국에게 있어서도 미국, 중국에 이은 3번째 해외투자지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한 데에는 법인세 우대, 용지 혜택 등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 유치 정책과 베트남 근로자들의 근면함, 높은 노동생산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투자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국민들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이 현지 직원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는데, 협력이 긴밀해지는 만큼 이러한 협력이 오히려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늘 존중하는 마음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 베트남은 아세안과의 관계에 있어 핵심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베트남의 호감은 매우 높다. 한류와 기업 진출의 역할이 클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에 호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베트남뿐만 아니라, 최근 아세안 시장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을 이을 다음 유망한 투자국은 어디라고 보나? 동남아시아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실, 아세안 진출에 있어 한국은 일본, 중국 등에 비하면 후발 주자에 속한다. 이미 이들 기업들이 아세안 각국에 진출해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과의 합작을 통한 진출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시장 진출에 있어 국수주의적인 마인드보다는 기업 이익을 우선하는 실용주의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한국과 아세안은 유교 문화, 생활 사고방식,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국민들의 열정 등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기술력, 자본과 아세안의 우수한 노동력 및 높은 생산성을 상호 보완해 지속 가능하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일본과 중국은 정부 주도 하에 동남아 시장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골드러시라고 불리는 인프라 투자에서 양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국은 어떤 전략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중국은 국가 주도로 대규모 자금으로 투자하는 반면, 일본은 국가 주도로 진출하면서도 현지 국민 여론을 의식하며 보다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일본이 현지에서 호의적인 분위기를 의도하며 실속을 차리는 방식은 배울 만하다. 또한, 아세안 내 주요 투자 사업들은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가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해 일본 기업들이 사업을 맡는 방식이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 공항의 새로운 터미널 건설, 호찌민 1호선 지하철 건설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일본 기업들이 따냈다. 일본의 산업 연계형 원조 방식을 벤치마킹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 일본을 강대국으로 의식하고 이들의 대규모 자금 유입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경계하는 한편, 한국은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로 인식한다. 빈곤과 전쟁을 겪은 아픈 과거를 가진 한국에게 ‘동류의식’을 느끼고, 빠른 시간에 선진 기술을 지닌 국가로 발전을 이뤄낸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세안에 중국과 일본처럼 대규모 원조사업을 할 수는 없지만, 대국주의적 야욕이 없고 각국과 영토 분쟁이나 안보적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도 거의 없다. 한국이 선의의 협력국이라는 이미지를 정착시켜 나간다면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 기업들은 중국과 일본 기업들에 비해서 과감한 실행력과 뛰어난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같은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대로 성숙한 세계 시민으로서 아세안 국가 국민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 마지막으로 한-아세안 센터 신임 사무총장으로의 각오나 포부를 듣고 싶다. 

"2009년 한-아세안센터 준비기획단의 일원으로 센터의 탄생을 지켜봤었는데, 10년이 채 안되어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기쁘다. 내년은 한-아세안 관계 30주년과 한-아세안센터 1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이다. 그간 숨가쁘게 성장해온 센터가 이제는 실질적인 사업들을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