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금융지원과 채권회수 등 형식적 대책에서 벗어나, 해운업의 뿌리부터 튼튼히 다지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5일 해양수산부에서 발표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운업이 살아나기 위해 쉽지않은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비장함이 묻어 있다. 한번 무너진 해운업을 살리기가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운재건에 앞장서기가 쉽지 않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죽어라고 해야 2022년 매출액 51조원 달성이 가능하다”며 “열심히 해서 5년 뒤에 2008년 호경기 시절처럼 선대량과 매출 다 이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해운업은 지난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암흑기를 걷고 있다. 현재 해운산업 매출액은 2016년보다 10조원 이상 감소하고,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등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꺼내들며 해운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이미 주도권을 잡은 글로벌 해운선사들은 덩치를 불리며 독주 채비를 갖췄다.
한국 해운업은 설 자리를 잃고 방향을 상실한 채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 해운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글로벌 해운시장은 장기불황에 따른 경영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얼라이언스를 구축하고, 대형선사간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그 결과 기존 4개 해운동맹이 3개로 통합되며 ‘과점형태’를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해운업계 인수합병은 상위 20개사가 11개사로 통합되는 대규모 재편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경쟁국은 정부차원의 금융지원과 함께 선사 경영안정을 위한 보조금 지급, 화물확보까지 나서며 전방위 지원을 쏟았다.
하지만 한국 해운업은 여전히 위기상황이다. 전체 선사의 40% 이상이 부채비율 400%를 넘는다.
선대규모 역시 2014년까지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해운불황이 심화된 2015년부터 축소와 확대를 반복 중이다. 특히 해외 경쟁선사와 비교, 선박연령이 높고, 에너지효율 등급도 좋지 않다는 점은 시급히 개선할 과제다.
◆김영춘 장관 “해운 되살리는데 3년 이상 걸릴 것”
김영춘 장관은 이번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선사와 화주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전처럼 정부 지원만 바라봐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특히 침체된 한국 해운업이 본 궤도에 오르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역시 업계의 노력이 전제된 분석이다.
김 장관은 “이번 정부의 첫 해운정책인데, 회복은 쉽지 않다. 앞으로 3년이 고비다. 정부가 얼마를 지원해 주겠다는 부분은 뺐다. 업계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화주들이 국적선사를 얼마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적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해운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통합작업이 불가피하다며 근해선사 재편을 시사했다. 지난 3일 장금상선과 흥아해운 컨테이너 정기선부문 통합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현재 근해선사는 12개 선사가 운영 중인데 과당경쟁으로 수익악화가 반복되고 있다.
김 장관은 “해운업 구조조정은 업계 스스로 통합작업이 불가피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선사 경영개선,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국적선사의 컨테이너 적취율 향상 방안이다. 현재 국내 화주 대부분이 국적선사에 화물을 싣지 않아 발생하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다.
김 장관은 “과거 2000년 이전 전략화물에 대해 국적선사가 운송하던 자료가 있다. 규제 해소차원에서 외국선사에게 개방했는데, 이게 오히려 국적선사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이어서 안보가 중요하다"며 "원유·석탄·가스 등 전략화물에 대해서는 필요한 분량만큼이라도 국적선사 이용제도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략물자 운송을 시작으로, 국내화물을 운송하는 민간업계에 대해서도 국내선사 이용시 인센티브 부여방안을 고민하겠다”며 “국내 선사 적치율이 지금보다 10%만 올라가도, 국내 해운사의 경영개선에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목표는 적취율 10% 상승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해운정책이 현대상선만 지나치게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현대상선은 ‘공기업’이라는 부분을 명확히 했다.
김 장관은 “우리 한국재건 5개년 계획에 포함된 선사지원은 현대상선 비중이 10%를 넘지 않는다. 대부분 중소 선사를 위한 대책”이라며 “다만 현대상선은 현재 민간 기업이 아니다. 회사를 살려서 회수해야 하는 공기업”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우리나라 수출 화물은 99%가 해상운송이다. 구주, 미주 운행 선박노선은 이미 망실돼 무역 경쟁력 강화에 치명적”이라며 “원양선사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경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원양선대 회복을 정책 목표로 삼은 이유다. 현대상선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대책은 환영, 구체적인 부분 아쉬워”
전문가들은 정부의 중장기 해운정책에는 환영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지원규모나 원양선사 합병 문제 등이 빠진 부분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한국선주협회는 5일 정부 해운재건 정책 발표 후, 성명서를 통해 “이번 계획은 오랜 기간 민간과 긴밀한 소통이 바탕을 이뤘다”며 “해운산업 재건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전세계에 선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선‧화주 상생협력과 국적선사 적취율 상향에 대한 부분을 긍정적인 내용으로 꼽았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친환경선박 건조는 ‘골든타임’일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선주협회는 “해운거래시장 선진화를 통해 효율성과 안정성이 제고될 것”이라며 “정기선 분야도 상호협력과 제휴강화로, 체질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측면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총론만 열거, 컨테이너 정기해운 재건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윤민현 전 중앙대 객원교수는 “예상대로 선언적, 수사적 총론만 열거된 부분이 아쉽다”며 “2016년 한진해운 파산 당시와 비교, 크게 달라진 내용을 찾기 어렵다. 운수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고, 금융정책 주도로 진행될 경우 해운재건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