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가을 서울공연' 언급과 관련, 4월과 5월에 예정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 있는 결실을 암시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도 대북 경계심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을 부인 리설주와 함께 관람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이 언급한 '결실'이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상당한 결실을 가을까지 맺어야 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을 직접 관람한 데 대한 답례 형식이지만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제사회와 한국 측에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행보"라고 분석했다.
현재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뿐 아니라 '보편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주려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우리 대북특사단 환영 만찬과 방중 일정에 부인인 리설주를 동석시켜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간접적으로 과시한 바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날 김 위원장의 예술단 공연 참석에 대해 "좋은 일"이라고 평가한 뒤 "김 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예술단의 남측 공연을 보셨으니 자신이 남측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느냐"며 "남북 화해와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평양 예술단 방문단에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뿐 아니라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김상관 국정원 2차장이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4·27 남북 정상회담 의제 등에 대한 사전조율이나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상균 2차장은 대북특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오가고, 남북관계에서 핫라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훈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북한의 뜻밖의 대외행보에도 한반도 정세의 핵심플레이어인 미국의 대북 경계심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도발-협상-보상-재도발이란 악순환의 재판이 아닌가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대북 '슈퍼 매파'로 평가받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는 북·미 정상회담 등 북·미 대화가 북한에 시간벌기용으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대북 강경파로 손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은 1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며칠 전 볼턴 내정자와 만났다"며 "볼턴의 가장 큰 걱정은 북한이 시간을 벌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레이엄 의원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보유하려면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며 “볼턴은 이런 협상을 북한이 과거에 했던 것처럼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5월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포기를 목표로 해야 한다며, 가능하다면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4개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정세가 미국 대 남·북·중 등 사실상 1대3 구도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반도 비핵화 해법을 놓고 한국은 ‘선 핵폐기-후 보상'을 골자로 하는 리비아식 해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일괄타결과는 결이 다른 상황이다.
여기에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제시하는 등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흐르자, 트럼프 대통령이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대리도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긴급간담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목적은 바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한과 북한, 미국이 진행하는 3자 정상회담을 꼽고 있다.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남·북·미 3자 회담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미 정상회담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