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법원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이 전 대통령의 영장심사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 전 대통령 측이 피고인 없이 변호인단만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혼선에 빠졌다. 통상 피의자가 불출석하면 서류심사만으로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만 출석해 심문을 진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법원은 전날 영장심사 일정을 취소하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인영장을 재차 발부할지 △변호인과 검사만 출석하는 심문기일을 지정할지 △심문 절차 없이 서류심사만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할지 등 세 가지 방안을 두고 고심하다 결국 이날 서류심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 '영장심사 포기 후 구속영장 발부' 공식
만약 피의자가 불출석할 경우 검찰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을 감수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연히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영장심사에 참석하지 않은 피의자 32명은 모두 구속됐다.
주요 형사 사건을 살펴봐도 피의자들이 영장심사를 포기한 경우 법원은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발부해왔다.
가장 최근 사례는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검사) 출범 후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소속 김모(49) 부장검사다.
조사단은 지난달 12일 김 부장 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긴급체포, 이틀 뒤인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다음 날 김 부장검사가 영장심사를 포기하자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지난해 7월 가맹점 업주들을 상대로 '갑질'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은 정우현 전 MP(미스터피자) 회장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영장심사에 불출석했다가 결국 검찰에 구속됐다.
2016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프블릭 회장을 둘러싼 법조비리에 연루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김수천·최유정 전 부장판사 역시 법원에 출석해 선처를 호소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과 달리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장심사에 출석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두 차례 휴정을 거치며 8시간 40분 동안 심리를 받았는데, 이는 제도 도입 이후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 가운데 영장심사에 출석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앞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당시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이라 판사가 홀로 검찰 수사 서류를 토대로 5~6시간의 서면심리만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이 전 대통령이 영장심사에 불출석하면서 구속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서류심사 때 검찰이 낸 서류엔 대부분 피의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고, 피의자는 영장심사에서 그와 반대되는 걸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영장심사는 피의자를 위한 권리"라며 "피의자가 그 권리를 포기하는 마당에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