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vs 인력난" 근로시간 단축 '기대 반 우려 반'

2018-03-0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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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 업종별 온도차 커

-기업들, 부담 줄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골몰

오는 7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둔 기업들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 환경의 변화를 통한 시대적 요구에는 적극 동참한다는 분위기이지만 , 근로시간 축소로 인한 대체 인력 추가 고용, 휴일 근로 가산 지급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성 감소가 야기될 경우, 노동자 임금 감소는 물론 기업 경쟁력 하락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현장 적용 확산

재계에서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신조어)'에 따른 기업 문화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에 익숙해진 관행을 깨뜨리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다만 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이 달라 양극화 현상이 우려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이다. 회원국 35개국 평균 1764시간보다 305시간 더 일하는 셈으로, 세계 최장 수준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은 근무 시간 단축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통해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법률 개정안을 적용한 ‘근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사업 부서를 중심으로 주 52시간 근무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법이 시행되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만큼 지난해 7월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며 “사무직과 생산직 등 전 직군에서 차질 없이 지켜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달 26일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앞서 올해 초부터 생산직 일부 라인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데 이어 이달부터 모든 생산직으로 이를 확대 적용한다.

LG전자 관계자는 “HE(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 일부 조직을 시작으로 주 52시간 근무 시범운영을 확산중”이라며 “이달 중 MC(모바일) 등 전 사업부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부터 52시간 근무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이달부터는 일부 조직에서만 시행하던 유연근무제를 전사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은 ‘하루 4시간 이상, 주 40시간 근무’라는 기본틀 안에서 생활패턴과 업무상황 등을 고려해 최적 근무시간을 스스로 정하게 된다.

신세계그룹은 대기업군 중 가장 선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 중이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1월 1일부터 주 5일을 기본으로 한 기본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정했다. 이는 하루 7시간 근무로 2004년 주 40시간제 도입 당시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더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계에는 비상 상황이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사람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허덕이는 데다 연장근로 단축으로 평소 받던 수당 등이 줄어들면 임금 감소마저 예상된다. 특히 초과 근무가 많은 제조업은 당장 생산 납기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 차질 우려 등 경영 압박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시 5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인력 약 44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30∼99인 사업장에서 약 15만명, 10∼29인 사업장에서 약 12만7000명 등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인력 부족이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혹여 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추가 인건비가 증가하는 만큼 영세한 중소기업 경영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막상 현실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는 소득 감소가, 중소기업 사업주에게는 운영 부담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유연한 제도 운영 필요" 한 목소리
재계는 주 52시간 도입을 위해서는 유연한 제도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근무 방식과 일자리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산업별·업종별·직무별 특성을 감안한 보완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선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한 신세계그룹만 하더라도 직무별 온도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줄어들어도 같은 업무를 하는 계산원과 물류창고 정리 직원 등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기출근을 해야 일을 다 끝낼 수 있다”며 “대외적으로는 일일 근무시간이 한 시간 줄어드는 것으로 홍보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간 휴게시간이 모두 줄어들어 오히려 근무상황이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제도를 적용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 리스크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연구개발(R&D) 같은 전문분야 부문이 대표적인 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성수기와 비성수기 등 시기적 특성, 일정 기간에 업무량이 집중되는 R&D 부문 등의 업무적 차이점 등 여러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면 불법적인 행위들로 인해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R&D 분야 같은 전문인력은 대체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고 단기간에 생산성을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한다”며 “기술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R&D를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업종 특성상 신제품 개발 등을 앞두고 야근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일부 분야에서 3개월 혹은 6개월 등 일정 기간을 평균 내 주당 근무시간을 따지는 것도 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생산성 제고 없이 근로 시간만 줄어들면 기업·근로자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동비용마저 줄지 않는다면 기업 경쟁력은 물론 근로자 삶의 질도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따른 추후 보완이 필요하다"며 "생산 차질이나 인건비 증가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법 시행 전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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