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문화예술계를 넘어 사회 각계각층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지자 정부가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책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해 성희롱·성폭력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 상황을 각 부처·기관별로 점검해 공무원 사회부터 성희롱·성폭력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하지만 현실의 다급함과 달리 재탕식 정책이 대부분이란 지적이 나온다. ‘성희롱 공무원 퇴출’ 등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책의 대부분이 신고 활성화, 법률 조언 및 심리 치료, 예방교육 강화 등 기존에 발표한 대책과 다를 것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공무원 0UT, '미투'대응 법정부협의체 신설
27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와 ‘공공부문 성희롱, 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정 장관은 “여가부가 선두에서 정부의 (성희롱·성폭력) 정책 총괄기능을 강화하고, 공공기관부터 앞장서서 사회의 전반적인 성차별적 구조를 개선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성희롱·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다. 성폭력으로 일정 벌금형 이상의 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되면 즉시 공무원 사회에서 퇴출된다. 성희롱 등으로 징계받은 공무원은 실·국장 등 관리자 직위에 보임하지 못하도록 보직을 제한하는 제도도 검토된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도 성희롱 가해자는 인사제재가 공무원 수준으로 상향된다,
정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부처협의체도 구성된다. 오는 28일 관계기관 회의를 시작으로 정기회의를 개최해 성희롱·성폭력 추진과제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3월께 부처별 세부 이행계획과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달부터 100일간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도 운영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온라인비공개 게시판 등을 개설해 사건을 접수받고, 여가부는 피해자가 사건이 해결될 때가지 기관 내에서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가부 및 관할 주무부처를 통해 해당 기관에 대한 현장 특별점검도 실시한다. 성희롱 예방교육 운영실태, 사건조치결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여부가 조사 대상이다. 가해자에 대한 적정조치 기준을 담은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 대응 가이드라인’도 보급할 예정이다.
정 장관은 “정부가 성희롱 가해자들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며 “성범죄는 내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형 범죄인 만큼 어렵게 입을 연 피해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뒷짐졌던 여가부···뒤늦게 허둥지둥
여가부는 이날 발표된 대책이 지난 11월 발표된 ‘공공기관 성희롱 방지대책’의 보완 대책이라고 밝혔다.
앞서 발표된 대책에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신고활성화 등을 위한 세부지침을 마련해 공공부문부터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성폭행 공무원 퇴출과 여가부 장관을 컨트롤 타워로 하는 범정부협의체 신설만 제외하면 새로운 내용이 없다.
신고센터 설치 및 현장점검 강화, 2차피해 방지를 위한 행위자와 피해자 즉시분리 조치 등은 대부분 기존 정책의 재탕이다. 각 기관의 사건 은폐 등을 방지하기 위해 ‘성희롱 고충처리 옴부즈만’도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외부전문가를 활용 방안은 이미 앞서 논의됐던 내용이다.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강화 등도 이미 시행중이거나 예고한 대책이다. 대학정보공시에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실적 항목을 반영한다는 대책이 실제 대학 내에서 '학점-학위'를 빌미로 자행되는 권력형 성범죄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부문 직장개선을 위해 SNS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with you' 캠페인을 전개하자는 대책도 사태를 너무 알인하게 보고 있다는 지적을 키운다.
정 장관은 이날 여가부를 비롯해 각 부처가 ‘미투’ 움직임에 대해 너무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수개월간 진행된 미투운동을 지켜보고 분석하면서 부처 간 대응범위와 구체적인 방식 등을 조정-협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걸렸다”며 “신설된 범정부협의체를 통해 기관장 책임 강화, 피해자를 위한 법 개정 등 필요한 모든 부문에서 각 부처가 할 수 있는 일을 샅샅이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