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용서 못 한다!" 왕년에 오락실 좀 다녀 본 이들이라면 아마도 태권도 사범 김갑환을 기억할 것이다. 1992년 대전격투게임 '아랑전설 2'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 꾸준히 출연한 김갑환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장수 캐릭터다. '오버워치' 송하나, '스트리트 파이터' 한주리, '철권' 화랑의 까마득한 선배인 셈이다.
게임 속 김갑환의 실존 모델인 김갑환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 전 회장이 작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4일 향년 82세로 작고했다.
故 김갑환 전 회장은 70년대부터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산업을 주도한 인물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김 전 회장과 똑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은 생전 '게임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원래는 레슬링협회에서 일을 했다. 레슬링이 갑자기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 우연히 일본에서 게임기를 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전설적인 재일 한국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수행요원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던 시절의 얘기다.
그는 "게임을 수입해보니까 이윤이 3배가 남아서 '이게 장사가 되는구나'하고 생각했고, 그 후에 계속 게임기를 수입하게 됐다"며 게입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를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이후 국내 판매권을 획득하며 일본의 게임 제작사 SNK와 인연을 맺는다.
게임 캐릭터가 김 전 회장과 동명이인이 된 사연은 뭘까. 당시 SNK가 '김하이폰'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캐릭터를 게임에 넣으려고 하자, 김 전 회장은 "그런 이름은 한국에 없다"고 조언해 아예 김 전 회장 이름이 대신 들어갔다는 '설'이 있다.
김 전 회장은 다소 다르게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태권도와의 인연을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유단자이기도 한 김 전 회장이 당시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SNK 측에 제안했다는 것이다.
"당시 SNK에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니시야마 전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에게 게임 속에 태권도 캐릭터를 넣자고 건의를 했죠. 태권도 자료도 만들어 보내고 끈질기게 설득하니까 결국 그쪽에서도 그러자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설마 게임 캐릭터에 제 이름을 붙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
"그들이 기획을 할 때 세계 각국의 격투기를 넣어 게임을 만들기로 한 거지. 마침 내가 태권도협회에 직간접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SNK에서 알게 되고 한국의 판매처가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 거야." ('게임저널')
이후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올림픽 정식 종목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열정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김 전 회장 덕분에 게임을 통해서나마 한국과 태권도를 알게된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