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제조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에게 실질적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이 터지자 피해자 구제책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는 “기업 활동을 위축 시킨다”며 불만을 표했고, 법조계에선 “대형 로펌의 배만 불려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학계 및 시민단체는 ‘3배’로 규정한 배상이 적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법과정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의미와 한계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 기업 반발…대형 로펌 일감 늘려주기?
이에 정치권은 지난해 3월 30일 제조물 결함으로 피해 발생 시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토록 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경과 규정을 거쳐 4월 18일 본격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된다.
하지만 정작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업계, 학계, 피해자 모임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8일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실제 받은 피해보다 많은 액수를 배상해 주는 것은 기업을 망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 발의를 담당한 여당 모 의원실 관계자는 7일 법과정치와의 통화에서 “이런 법안을 내면 이해관계자인 기업들은 당연히 활동이 위축된다고 이야기 한다”며 “당시 우리는 피해를 본 국민들 입장을 반영해 법안을 발의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안 발의 당시 상임위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향후 어떤 식으로 법이 안착될 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반발과는 다르게 법조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시행을 반기는 분위기다. 대한변호사협회 이율 공보이사는 업계의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순간적 착시현상으로 기업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결과는 나올 수 있다”면서도 “그동안 이득은 취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소액 배상으로 시간을 끌어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입혀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보이사는 “기업도 준비를 해야 하고 미처 인지하지 못한 위법행위도 있다”며 “과도기라고 보면 된다. 도입자체가 의미가 크기 때문에 이 제도가 정착되면 배상 기준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해당 법의 시행이 대형 로펌의 일감만 늘려주는 꼴이 될 것이란 비판을 내놓고 있다.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대형 로펌이 기업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수임 여부와 별개로 김 교수는 “제조물 책임에 있어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면 소송이 붙었을 때 소비자에게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보이사는 “물론 사건이 대형로펌에 쏠리는 현상이 있다. 김앤장이 전체 소송의 3분의 1을 독식하는 현상”이라며 “다만 별도의 방법을 통해 시장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정착되고 확대된다고 해서 대형로펌에게만 유리하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 3배 기준…너무 많다‧적다 설왕설래
당초 3배를 보상해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민법 기준에 맞지 않는 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피해받은 만큼만 보상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피해로 인한 이득을 얻을 순 없다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따르다 보니 손해를 보충해주는 측면이 있다”며 “현 손해배상 제도로는 제조사에 징벌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법에 미국식 아이디어를 들여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소송법상 민사 개념과는 다르다”며 “그래서 반대하는 교수들도 많고 학자들끼리 설왕설래 한다”고 말했다. 단 그는 3배 기준이 기업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김 교수는 “기업이 물건을 팔아서 얻는 이익에 비해 3배 정도는 징벌적 개념이 되지 않는다. 실효성이 없다”며 “10배까지는 돼야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배상액이란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위자료를 의미한다. 제조물 피해로 입은 치료비 등 직접 지출한 경제적 손실, 불법행위로 인해 장래 얻을 수 있었던 노동력 감소분,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에 포함된다.
이에 이 공보이사는 “3가지를 모두 포함한 것의 3배가 된다. 액수가 상당할 것”이라며 “3배로 피해자가 이득을 본다는 표현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3배는 법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기준이다. 기업의 활동은 지켜주면서 적정한 수준의 배상은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옥시 3~4급 피해자…“배상 청구조차 못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이자 '천식질환피해자구제인정과인정범위확대추진촉구모임' 강은 대표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먼 나라 이야기다. 옥시 측은 지난 2016년 8월 피해자들에게 최대 3억500만~5억5000만원이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피해 가능성 확실(1급), 가능성이 높다(2급)는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만 포함됐다.
하지만 강 대표처럼 3급~4급 피해자에게 옥시 측은 배상금은 둘째 치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강 대표는 <법과정치>와의 통화에서 “1급~2급 피해자가 6000명인데 이 중 125명만 배상을 받았다”며 “125명은 환자이고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2급 판정을 받고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의 폐업으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5월 가습기 살균제 유족 A씨는 세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임씨에게 “세퓨가 3억69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국가의 배상에 대해선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실제 배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퓨는 다른 제조업체와 달리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들과 조정에 합의하지 않았다. 또한 세퓨 측의 제품을 제조‧판매한 버터플라이펙트가 2011년 폐업해 보상 가능성은 더욱 낮다고 피해자모임은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강 대표는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정치권에 피해자를 위한 법안 발의를 촉구했다. 아울러 “지금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행복한 고민”이라며 “피해자로 인정받는다면 당연히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