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서풍이었다. 죽은 잎사귀들을 몰아가면서 날개 달린 씨앗들을 겨울의 잠자리에 누워 있게 하는 바람이었다. 파괴하면서 보존하는 바람이었다. 그 서풍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바람이 분다. 낙목한천(落木寒天) 삭풍이다.
시인 셸리는 노래했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그렇다. 대한(大寒)이 물러가자 봄이 저만치 달려온다. 어느덧 입춘이다. 입춘에 장독이 깨진다 했던가. 입춘 추위는 꿔서 해도 한다더니 옛말 그대로이다. 그래도 우수(雨水)가 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 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훈풍이 불어오려나.
본디 홀수를 양(陽)의 숫자라 하여 음(陰)의 숫자인 짝수보다 선호했다. 그래서 길일도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들었다. 2, 4, 6, 8일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 6월 6일은 우리에겐 망자의 넋을 달래는 현충일이다. 1944년 6월 6일은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졌던 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음수인 팔(八)자를 좋아하는 것은 ‘큰돈을 번다’는 ‘파차이(發財)’의 발(發)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복(福)이란 첩을 거꾸로 붙이는 것도 ‘넘어질 도(倒)’가 때가 도달했다는 ‘이를 도(到)’와 발음이 같아서이다. 복이 도착했다는 의미의 ‘도복(到福)’이다.
입춘은 태양이 황경 315도에 이르렀을 때인데, 음력으로는 정월, 양력으로는 2월 4, 5일이다. 올해는 4일이다. 입춘을 전·중·후로 나눠 첫 5일 동안 동풍이 불어 얼었던 땅을 녹이고, 다음 5일간은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며, 마지막 5일에는 물고기가 얼음 아래에서 헤엄을 친다고 했다. 그런데 ‘들 입(入)’자 입춘(入春)이 아니라 ‘설 립(立)’자 입춘(立春)이다. 봄으로 들어가는 날이라고 보면 입춘(入春)이 그럴 듯해 보인다. 물론 ‘설 립(立)’에도 들어간다는 뜻이 있다. 옛날에는 그런 뜻으로 많이 쓰였으니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입춘(立春)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입춘대길의 짝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생각하면 설 립(立)이 세울 건(建)에 대응하는 듯 보인다. ‘서다’와 ‘세우다’가 비슷한 맥락 아닌가. 봄은 여기서 사계절을 넘어 ‘우주의 봄’을 상징한다. 삼라만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때이자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어머니임을 내포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이라 했다. 도올 김용옥은 “계곡의 하나님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물한 암컷이라 한다. 가물한 암컷의 아랫문.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고 번역했다. 천지가 시작되는 계곡의 문, 이른바 ‘가물한 암컷’인데, 우주의 어머니이자 만물의 자궁(子宮)이란 뜻일 게다.
이런 의미에서 립(立)은 그 형상이 사람이 고개를 들고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우뚝 선 모습이다. 한편으론 생명을 배태하고 탄생시키는 생식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도올이 말한 ‘가물한 암컷’이자 ‘현빈지문(玄牝之門)’의 상징은 아닐까. 이 ‘가물한 암컷’에 봄이 왔으니 바야흐로 만물이 생성되는 순간이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고, 음양(陰陽)도 조화를 이뤄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가물한 암컷(玄牝)’에 봄이 왔으면, 이제 ‘누런 수컷(黃牡)’이 등장해야 한다. 천자문(千字文)도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한다. ‘하늘과 땅은 가물고 누르다’란 말에서 도덕경의 ‘천지근(天地根)’을 연상하면 지나칠까. 입춘의 대구(對句)가 건양(建陽)인 점은 그래서 조화롭다. 만물이 생성하는 씨앗인 것이다.
입춘대길도 붉은색이면 섬뜩할까. 한 40대가 형사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붉은 사인펜으로 쓴 ‘입춘대길’이 전부였다. 2015년 1월 법원은 이를 ‘증언 보복’으로 판시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입춘을 맞아 그냥 인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공포심을 느꼈다”고 했다.
봄은 오는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마음에 걸린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를 끼고 평창올림픽이 열린다. 입춘 지나 분다는 훈훈 동풍(東風)이 자칫 꽁꽁 동풍(凍風) 될까 걱정이다. 태백산맥에 올라 부채질해야 하나. 때이른 높새바람이라도 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