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有兩眸(아유양모) 只以觀人之貌(지이관인지모) 不可以觀吾之貌(불가이관오지모)
- 김낙행(金樂行·1708~1766)
유체이탈(幽體離脫)을 하지 않는 한, 내 두 눈으로는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 거울도 있고 사진도 있다지만, 그 속의 얼굴은 거울과 렌즈에 굴절된 얼굴이지 실제의 진실한 내 얼굴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얼굴과 외모를 치장하는 데 무던히도 애를 쓴다. 왜?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남의 인정을 받고 남의 칭찬을 받으면 세상살이가 편하긴 할 터이다. 그러나 남을 의식해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순간, 적든 많든 가식(假飾)과 위선(僞善)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것이 반복되고 지나치면 진실과 내실은 사라지고 거짓과 허울만 남게 된다.
여기서 위기(爲己)는 나의 세속적 이익만 꾀하는 이기(利己)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이기는 오히려 위인(爲人)에 더 가깝다. ‘위인’을 하게 되면 나의 외모,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생각은 자기 검열과 분식(粉飾)을 통해 왜곡돼 나의 본모습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자의 시대든 오늘이든 시대를 불문하고 ‘위기’를 하여 나의 진실한 민낯을 마주하는 게 불편한 모양이다. 그만큼 나의 크기가 작고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의 크기가 작으니 나를 믿지 못하고, 나를 믿지 못하니 나를 꾸며서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결과, 눈이 있다 해도 나의 진면목(眞面目)을 나도 제대로 못 보고, 남도 제대로 못 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