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탕으로 부자가 돼 보자며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를 사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상화폐를 단절시켜주세요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소중하단 걸...’이라는 제목의 청원 내용중 일부다. 요지는 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노동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투기판으로 변질된 가상화폐 시장이 사회문제로 대두 중이다. 가정주부와 은퇴한 노인뿐 아니라 10대 청소년들도 가상화폐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비트코인으로 검색해보면 도시전설격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일례로 한 누리꾼은 ‘지인이 1억원을 벌었다’며 본인도 투자에 나설 예정이라는 글을 올렸고, 다른 누리꾼은 기자와의 인터뷰 형식의 글을 통해 1000억원을 번 투자자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 직접 수백%에 달하는 수익률 현황을 공개하면서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는 글을 남긴 누리꾼도 있었다.
해외에서도 다수의 성공사례가 전해진다. BBC에 따르면 29세인 알레산드라 솔버거는 비트코인이 하나당 9달러이던 2012년에 투자해 원화 가치로 억대 수익을 거뒀다. 25세의 사아드 나자도 억대에 달하는 이익을 거뒀으며 원한다면 “일하길 그만둬도 될 정도”라고 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 가상화폐에 투자한 직장인 중 상당수가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사람인은 지난 12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직장인 9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선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31.3%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자 중 80.3%가 이익을 봤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손실을 봤다고 답한 사람은 6.4%에 불과했다.
◆‘투자 광풍’ 가정 넘어 금융권까지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의 경우 묻지마 투자 시 위험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제한폭이 없어 폭락할 경우 제동을 걸 수 없고, 가상화폐 거래소가 해킹 등으로 파산할 경우 투자자들은 자금을 어떤 보상도 없이 고스란히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광풍’은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도까지 스며든 모양새다. 실제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소개되던 해 가치가 이렇게 상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블록체인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지 구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사놓고 잊고 뒀더라면 대박이 났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신의 부인이 가상화폐에 투자중이라고 말한 한 증권사 임원은 “교류가 활발한 전업주부들의 최대 화두는 가상화폐 투자”라면서 “리스크가 커 이를 말리고 싶지만 여기저기서 이익을 봤다는 말들을 많이 듣다보니 투자하겠다는 고집을 꺾기가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우려에 정부는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또한, 가상화폐 관련 범죄나 투기 확산 정도가 심해질 경우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상화폐 시장은 널뛰기 행보다. 금융정보분석원(FIU)까지 가세해 추가 규제안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가격은 급등락 중이다.
◆노동 가치 훼손되는 일 없어야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는 전북일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가상화폐 열풍으로 노동의 가치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그는 “가상화폐 열풍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가치관의 큰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풍조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도 비트코인 투자와 노동 가치 훼손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교환에 나서고 있다.
한 누리꾼은 “비트코인 투자가 노동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동의 기준이 이미 많이 바뀐 세상”이라며 “꼭 땀 흘리는 것만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가상화폐가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기 보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이들의 노동 가치를 폄하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으로 먹고 살다보니 가상화폐 대박 사례가 허탈감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