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크게 패한 위(魏)나라 군대는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조조(曹操)가 앞에 가던 군사가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으니, “앞쪽 산 굽이진 곳에 길이 좁은 데다 새벽에 비가 와서 땅이 패어 진흙 구덩이가 됐습니다. 진흙 구덩이 속에 말굽이 빠져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에 조조가 크게 성을 내어 “군대는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행군하는 법이다(軍旅逢山開路 遇水疊橋, 군려봉산개로 우수첩교). 진흙 구덩이를 만났다고 행군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豈有泥濘不堪行之理, 기유니녕불감행지리)”라 하고, 늙거나 어리거나 부상을 입은 군사는 뒤에서 천천히 가고 건장한 군사는 흙을 나르고 섶을 깔아서 구덩이를 메워 곧 행군하게 하였다.
한편 청(淸) 말기 왕계열(王季烈)이 편찬한 <고본원명잡극(孤本元明雜劇)> '곡존효(哭存孝)'에는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았다(逢山開道 遇水疊橋)”라 하여 '봉산개도(道)'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