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21일(이하 현지시간) 비상총회를 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 무효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에 원조를 중단하겠다며 위협하고 나섰다.
CNN과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이 표결을 지켜볼 것이다”라면서 "수억, 수십억 달러를 우리한테 가져가면서 우리를 반대하는 표를 던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반대 투표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서한을 보내 결의안에 찬성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헤일리 대사는 20일 트위터에 “우리는 우리가 도움을 주었던 나라들이 우리를 겨냥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면서 “총회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 목록을 만들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의 원조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국가들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의안 초안을 작성한 이집트의 경우 내년 미국으로부터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지원 받았으며 내년에는 13억8000만 달러 지원이 예정되어 있다.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정부가 돈과 힘을 이용하여 미국의 결정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협박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자신의 결정이 초래할 국제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한 일방적 외교노선을 고집하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 탈퇴, 파리기후협약 탈퇴, 유네스코 탈퇴, 예루살렘 선언이 모두 한 줄기에 있다.
미국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유엔 총회에서는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안보리에서는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총회에서는 어느 나라도 거부권을 갖지 않으며 다수결로 결정된다. 총회의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결의안이 채택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고립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을 무척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유엔 비상총회는 지난 50년 동안 단 10차례만 열렸는데 마지막으로 열렸던 것이 2009년 예루살렘과 팔리스타인 영토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다. 지난 18일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는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미국의 최우방국들이 예루살렘 선언 무효 결의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