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Deep Change·근본적 변화),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
1998년 9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SK(주) 회장에 오른 최태원 회장이 취임식에서 던진 화두다. 이후 최 회장은 SK그룹 전반의 체질을 바꿔 대내외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역점을 뒀다.
또 지난해 6월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는 "현 경영환경 아래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슬로(Slow)가 아니라 서든 데스(Sudden Death)가 될 수 있다"며 "모든 분야에서 ‘딥 체인지(Deep Change)’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 성과 속속···'뉴SK' 도약 가속화
내년 최 회장은 SK그룹 총수에 오른지 20년을 맞는다. 딥 체인지를 천명한지도 20년이 된다. 최 회장은 선대 회장의 역량을 이어받아 취임 직후 재계 5위였던 SK그룹을 부동의 3위로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30대 그룹 가운데에서도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SK 문화를 심어놓았다.
올해 모든 기업들이 경영 불안에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SK그룹은 최 회장의 주도 하에 ‘딥 체인지’의 추진 속도를 높이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수단은 SK그룹이 최대 장점으로 내세운 인수·합병(M&A)이었다.
우선 SK㈜는 LG실트론을 인수해 SK머티리얼즈, SK에어가스, SK트리켐, SK쇼와덴코와 함께 종합반도체소재 업체로의 도약을 이뤄냈다.
또 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 SK종합화학은 다우케미컬로부터 에틸렌 아크릴산(EAA) 사업과 폴리염화비닐리덴(PVDC)을 인수했다.
하이라이트는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 참여였다. 지난 9월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의 핵심 멤버로 참여한 SK하이닉스는 숱한 견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수전을 승리로 장식,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최 회장은 특히 초대형 M&A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 경영인들의 지원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딜을 해 승리할 것이냐?”라는 결정의 순간에서는 냉철한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재계 관계자는 “평소 온화한 성격의 최 회장이지만 M&A와 신사업 투자에 있어서는 어떤 총수들보다도 계산이 빠르고 경쟁사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며 "SK 역량의 상당 부분을 그의 능력에서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의 빅딜은 정체된 SK그룹의 사업구조를 혁신시키는데 일조했다. 최 회장이 인수한 대표적인 기업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는 SK그룹이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딥 체인지' 넘어 ‘빅 체인지’ 꿈꾼다
초대형 M&A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렌털과 리스 사업, 면세점, 바이오, 물류 등에서도 SK그룹은 꾸준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SK그룹은 2018년 ‘딥 체인지’를 넘어 ‘빅 체인지(Big Change)’를 꿈꾸고 있다. 올해까지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사업군 편성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최 회장이 꿈꾸는 ‘뉴 SK’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기존 사업군과 4차 산업혁명과의 결합·융합을 통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들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산이 큰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며 생각의 전환을 강조했다.
내년 사업계획의 향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그룹 정기 사장단·임원인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2016년에는 사장단을 중심으로 ‘성과주의’와 ‘세대교체’를 표방한 인사가 주를 이뤘다면, 올해엔 젊은 임원들의 대거 등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SK그룹 관계자는 “M&A와 투자를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따로 또 같이’라는 철학에 맞춰 계열사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며,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새롭게 발굴한 사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속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