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망 중립성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

2017-12-19 06:00
  • 글자크기 설정

[사진=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오바마 정부가 2015년 제정한 망 중립성 원칙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결국 폐기됐다. 지난 14일 미국 공화당이 추천한 FCC 위원 세 명이 망 중립성 폐기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3대2로 최종 통과했다. 이날 결정된 내용의 핵심은 인터넷을 기존 공공서비스에서 정보서비스로 변경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제 보편적으로 제공 받는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 차별적 서비스를 받는 상품이 됐다. 이번 망 중립성 폐기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망 사업자들이다. 망 사업자, 즉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트래픽의 속도를 늦추거나 반대로 특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망 중립성 폐기를 원했던 기업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망 중립성 원칙이 자본주의 시장 질서에 위배된다고 계속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 이후에는 적절한 이익 실현이 있어야 하는데, 망 중립성 원칙을 지키면 투자 유치도 힘들고 적절한 이익 실현도 힘들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역할은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기업의 할 일이 아니다. 기업은 사회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영리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투자가 일어나고, 기술 개발이 가능해지고, 신기술·신상품에 의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에 기초해 망 중립성 폐기를 원했던 기업들은 당연히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결정이 현재로서는 다른 지역에 확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달리 유럽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이라는 원칙을 계속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럽연합의 주요 당사자인 독일 경제부 역시 웹 접근 차별을 금지하는 유럽연합의 인터넷 관련 법규를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망 중립성 정책은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망 중립성의 완화를 주장한 반면 문 후보는 "네트워크 접속은 국민 기본권이자, 융합·초연결 시대의 핵심"이라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무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등 기본권을 확대할 것"이라고 공약했고, 현재로서는 망 중립성 원칙을 훼손할 어떤 계기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미국 FCC에 의해 망 중립성 논쟁이 재연됐지만 망 중립성 논쟁은 이전부터 계속 있어 왔다. 망 중립성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네트워크 역시 일반 소비재처럼 지불 능력에 따라 차별 서비스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망 중립성 원칙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나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정보와 콘텐츠를 받거나 유통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진영의 서로 다른 주장은 각기 합리적으로 보여 계속 논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망 중립성 폐기 진영의 논리에는 동의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 일반 소비재의 경우 타인의 더 나은 서비스가 나에 대한 불리함으로 작용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요금소(톨게이트)에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진입하면 누구라도 특정 차선을 강요 받지 않는다.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면 본인 판단 하에 적절한 차선을 선택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돈을 더 지불했다는 이유로 특정 차선의 독점적 사용을 허락했다면 나머지 차량들은 심각한 교통체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는 더 이상 고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게 되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됐을 때 예상되는 결과들이다.

최근 충남 어느 마을에서 장의차 통행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산소까지의 운구를 방해하고 500만원을 내지 않으면 통행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유가족과 오랜 시간 실랑이를 했고 최종적으로 이장과 마을 주민들이 고소당했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유사한 사례가 계속 드러났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관할 공공기관에 신고를 하면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마을 주민들과 좋게 좋게 해결하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특정 지역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가 악용을 당한 사례들이다. 네트워크를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게 되면 몇  사람은 돈을 벌게 되겠지만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가 망 중립성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