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어떤 사람이 맹자(孟子)에게 순(舜)임금의 아버지가 살인을 했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할지 물었다. 맹자는 순임금이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아버지와 함께 도망칠 것이라고 대답했다. 가까운 사람을 비호하더라도, 공직을 버려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공직을 버릴 수 없다면, 가까운 사람이든 소원한 사람이든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냉정해야 한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正祖)는 이렇게 말했다. “측근이라는 이유로 법률을 느슨히 하는 일이 없고 소원한 이라는 이유로 법을 엄히 적용하는 일이 없다면, 측근 한 사람을 징계함으로써 소원한 열 사람을 징계할 수 있다.”('일득록')
그런데 정조도 이 말을 실천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정조 18년(1794) 정약용이 경기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김양직과 강명길의 비리를 적발해 보고했다. 김양직은 사도세자의 능을 이장했던 지관(地官) 출신이고, 강명길은 혜경궁 홍씨의 병을 돌보았던 태의(太醫) 출신이다. 즉위한 첫날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천명할 만큼 부모에게 애틋했던 정조의 총애를 받아 이 두 사람은 현감과 군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런 인정에 끌린 정조는 이들을 용서하려 했다.
정조는 결국 이들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 측근이라는 이유로 용서한다면 법과 기강이 흔들린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측근뿐만이 아니다.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이든 돈과 힘이 없는 사람이든, 법과 공권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관용을 베풀 때도 똑같이, 냉정하게 대할 때도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