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5개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세제개편이 국제협약에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의 감세정책으로 자국의 급속한 자본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도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들 5개국 재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통해 “미국 정부는 국내 조세정책을 추진할 때 미국 정부가 앞서 서명한 국제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 기업에 유리한 지위를 부여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또 다른 일면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한은 개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세제개편 공동안을 마련 중인 미국 양원 협의회에도 전달됐다.
FT는 "미국의 감세안이 입법화될 경우 유럽이 보복을 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면서 "유럽과 미국이 환경문제나 최근의 예루살렘 선언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미국의 감세안 추진을 두고 갈등이 더 격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유럽) 재무장관들의 입장을 확인했다. 입법 마무리 과정에 있는 의회와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대응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유럽 재무장관들이 특히 문제로 삼은 부분은 하원 감세안에 포함된 신설 20% 소비세(excise tax) 조항이다. 이 조항은 미국 내 다국적 기업이 해외 본사 등 관계사에 지불하는 금액에 대해 20%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미국에 진출한 모든 다국적 기업에 일괄 적용될 방침이라 미국에 항구적 본사를 두지 않은 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앞서도 자동차나 전자제품 회사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또한 이 조항은 이중과세를 금지하는 국제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는데, 서한은 이와 관련해 "WTO 규정 등 국제협약과 배치되는 방식으로, 차별을 가할 수 있다”고 적었다.
아울러 서한은 은행과 금융기관 내에서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금액에 대해 10% 세금을 부과하는 상원의 세제개편안 조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포드햄 대학의 레베카 키서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이 두 조항은 WTO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면서 “차별적 조치라는 인식이 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밖에도 유럽 재무장관들은 상원 세제안 중에서 미국 기업들이 브랜드와 기타 무형자산을 통해 얻는 이익에 유리하게 과세하는 조항을 거론하면서 “수출업체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의했다. FT는 이 부분이 그대로 입법화될 경우 유럽이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와 관련, 키서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수출로 얻는 이익이 많을수록 인하된 20% 법인세율보다 더 낮은 12.5%의 세율을 적용받는 부분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중국이 미국의 세제개편으로 인한 즉각적인 파장을 우려해 긴급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더불어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20%까지 낮추는 감세안이 실시되면 중국에서 막대한 자본이 유출되어 미국에 집중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인민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자본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위안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환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기업들은 갖가지 공제를 받더라도 이익의 40~50%를 세금으로 납부한다. 공제후 평균 세금 부담을 따지면 미국이 중국보다 낮다는 것이 조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중국 당국은 위안화 가치가 방어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떨어진다면 자본 유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