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가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그에 걸맞은 사업을 펼치고 싶어도 예산의 제약이 따르는 이유다. 주민이 지역의 대표를 뽑았는데, 막상 그 대표는 주민을 위한 힘이 없다.
사실 취임 초에는 이런 고민조차 할 수 없었다. 2015년에는 필수 경비도 편성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예산이 200억원 정도. 최악의 재정위기 상황에서 직원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예산절감에 나서야 했다. 부서별 소모성 경비를 최대 30%대로 줄이고, 각종 수당의 월별 지급한도액을 하향 조정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재정위기상황을 2년 만에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찔한 기억이지만 이 같은 재정 위기상황은 여느 지자체나 겪는 어려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주민을 위한 사업을 맘껏 펼칠 수 있을까? 이름은 지방자치(自治)단체지만 자치에 필요한 돈도 권한도 없다. 지자체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재정분권은 이제껏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전국의 재정자립도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2003년 53.6%에서 지난해 52.2%로 떨어졌다. 지자체의 몸집은 커지고 있지만 매칭사업이 늘어나면서 속이 부실해졌다는 평가다.
지금의 자치단체는 주민 요구에 맞는 특색 있는 사업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각 지자체가 다양한 색깔의 정책을 벌이고 주민들이 이 정책에 반해 '저 도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모든 지자체가 똑같은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재정분권을 통해 지자체가 쓸 수 있는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야만 지역주민을 위한 특색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정부 약속대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대2에서 6대4까지 조속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
동작구는 내년도에 처음으로 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한다. 2013년 73만원에 불과했던 1인당 예산도 2018년에는 123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서울시 재정건전성 평가에서 인센티브로 51억원의 조정교부금을 추가 확보해 기준재정수요충족도가 서울시 자치구에서도 우수한 수준이 됐다. 빚을 다 갚고 비로소 '흑자 동작'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예산 걱정 없이 주민이 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싶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며 어느 때보다 고민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