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상 시상식장.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을 수상한 장은수(19)가 단상에 올라 애써 울음을 참으려다 발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이끌 풋풋한 샛별의 눈물을 지켜보던 동료들과 골프 관계자들은 울컥하면서도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장은수의 골프백에 새겨진 애칭 ‘짱블리’의 매력이다.
장은수가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은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할 때였다. 장은수의 아버지 장용진 씨는 딸의 투어백을 메는 베테랑 캐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은수에게 처음 골프채를 쥐어준 것도 아버지다. 놀라운 사실은 아버지는 골프를 배운 적도 쳐본 적도 없다는 것. 하지만 외동딸을 위해 독학으로 골프를 연구해 전문 캐디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
올해 장은수가 꾸준한 성적을 내며 신인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딸의 마음을 편하게 이끌어준 든든한 아버지 덕분이었다. 장은수는 아버지를 ‘15번째 클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아버지의 노고를 덜기 위해 전문 캐디를 쓰기로 했다. 이젠 신인왕을 넘어 더 큰 꿈을 펼칠 무대를 위해서다.
시즌 초반 신인상 유력 후보는 박민지였다. 프로 데뷔 10일 만에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민지는 신인상 후보로 독주를 펼칠 기세였다. 하지만 장은수의 꾸준함을 이기지 못했다. 비록 우승이 없었지만, 장은수는 28개 대회에 출전해 23차례 컷 통과를 하며 기복 없는 경기력을 선보였고, 7번이나 톱10 진입에 성공해 우승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장은수는 시즌 평균타수 23위(71.73타), 대상 포인트 18위, 상금순위 23위(2억3670만4903원)를 기록했다.
‘무관의 신인왕’이라는 타이틀은 낯설지 않다. 2015년 박지영과 지난해 이정은6도 우승 한 번 없이 신인상을 수상해 올해 장은수까지 3년 연속 무관의 신인왕이 탄생했다.
지난해 ‘무관’이 올해의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정은이 입증했다. 올해 4승을 수확한 이정은은 대상, 상금, 평균타수, 다승, 인기상, 베스트플레이어 트로피 등 6개 부문을 석권하며 KLPGA 투어 사상 최초로 6관왕에 등극했다.
장은수는 국가대표 상비군과 국가대표를 거쳤고, 점프 투어와 드림 투어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다. 평소 엉뚱한 매력을 뿜는 장은수는 골프채만 잡으면 냉철해진다. 보기 없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특히 아이언샷의 정확도가 뛰어나다. 내년에는 드라이브 구질을 드로우 한 가지로 바꿔 티샷 정확도도 높일 계획이다.
장은수의 롤모델은 미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인지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는 이정은이 닦아놓은 비단길을 걷고 싶다. 장은수는 “정은 언니처럼 되면 좋지만 그건 어렵고…”라고 웃으며 일단 내년 목표를 첫 우승으로 잡았다.
이정은도 올 시즌 개막 전에 ‘대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상 수상 소감에서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감격했다. 장은수의 잠재력과 가능성도 충분하다. 첫 우승을 언제 이룰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투어 데뷔 첫해 신인왕으로 눈도장을 찍은 장은수가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빛낼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