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座右銘)'은 '늘 옆자리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다. 학창시절엔 이 좌우명이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중요한 가치를 매기며 머리맡에 챙겼었다. 그러나 갖은 세파에 시달리며 중년을 넘기다 보니 지키거나 실천하지도 못할 거면서 내용만 거창할 뿐인 좌우명에 무심해지기도 한다.
중1 때 좌우명을 처음 정하게 됐다. ‘하면 된다!’ 담임 선생님께서 좌우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다음 시간까지 각자 정해 오라는 것이었다.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차 마침 새마을운동으로 귀에 익은 저 구호를 선택했다. 내 좌우명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그래 그래, 참 좋은 좌우명이야. 세상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네가 학생인 동안엔 공부밖에 할 게 없으니까 무조건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진하길 바란다”고 훈수를 두셨다. 그때 나와 라이벌이었던 전교 회장 친구는 앞의 두 발을 공중으로 치켜든 백마 위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앉아 오른손 검지로 알프스 산 꼭대기를 가리키는 나폴레옹 아래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글을 새긴 그림을 자랑스레 펼쳤다. 이후 그 친구가 살면서 언제나 불가능은 없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마침내 대학생이 됐는데, 학교는 독재정권을 향한 저항으로 구호와 화염병·최루탄 가스가 자욱했다. 새 나라의 어린이도 아니고 좌우명 같은 것은 유치했다. 다만, 혁명가 체 게바라나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 등을 뒤적이다가 '처변불경 처변불경(處變不驚 處變不輕)'을 발견하고선 감탄했다. 상황(처지)이 변해도 쉽게 놀라거나, 가벼이 행동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연 1만2000㎞에 이르는 고난의 대장정을 거쳐 중국 대륙을 장악했던 마오쩌둥다운 처세라 생각했다. 그래서 삶의 중심에 저 경구를 올려두기로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저 경구는 문제가 좀 있었다. 인생지사 때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일 때도 있는데, 저 경구는 좋게는 신중하게 하나 나쁘게는 사람을 지나치게 소심하게 만들었다. 좌우명에서 폐기했다.
결혼을 했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대기업에 대리로 근무하는데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졌다. 또 얼마 후에는 뉴욕발(發) 리먼 브러더스 금융 위기도 터졌다. 쉽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득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나를 튼튼히 붙잡아 줄 좌우명이 다시 필요해졌다. 인간은 생각보다 약한 존재니까. 그때 나를 지탱케 했던 금과옥조가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이었다. 고난의 행군을 하는 자에게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서야 맑은 향기를 뿜는다’는 말만큼 멋진 말이 또 있을까. 강한 바람이 불어봐야 억센 풀을 알 수 있다는 '질풍경초(疾風勁草)', 영하 20도의 혹한을 견디고서 새벽에 피워내는 꽃이라서 향기가 가장 진하다는 '발칸의 장미(Balkans Rose)' 같은 경구들이 수첩에 같이 적히며 힘을 북돋웠던 때가 이때였다. 참으로 힘들었던 때였다.
중년에 들어 상황이 좀 안정됐을 즈음 나는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던 중 ‘마크툽!’이란 주문을 만났다. ‘신께서 써놓으신 대로!’란 뜻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연연하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알려 하는 대신 오직 현재를 아름답게 하라. 그러면 다음에 오는 미래도 아름답게 이어진다. 중대한 순간에 신은 반드시 자신이 써놓은 대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 모든 게 잘될 거야) 같은 영화 속 말들이 이때 같이 따라붙었다. 외국어들이라 폼도 났다.
그러다 몇 년 전 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국산 좌우명을 만났다. ‘닥치는 대로 살아라!’였다. 어떤 현명하신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라는데 ‘마크툽’과 맥락이 일치한다. 어떤 기업주가 비석에 새겨 회사 건물 마당에 세워놓기까지 했다는 이 말은 언뜻 보기에 ‘아무렇게나 막 살아라’는 그런 가벼운 뜻이 아니다. ‘지나버린 과거에 연연치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염려치 말고, 오직 현재 네 앞에 닥친 일에 집중해 현명하게 헤쳐나가라. 인생은 닥치는 일들의 연속이다’는 말씀이다. 긴긴 인생을 끝까지 헤치고 살아보신 분만이 깨달을 수 있는 깨알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말씀에 필이 확 꽂혔던 것인데, 서평을 쓰다가 산문집을 출판했고 끝내는 겁도 없이 장편소설까지 3권의 저서를 출판하며 작가가 됐다. 신문 지면의 장문 에세이 ‘그래그래’도 닥치자 두려움 없이 덤볐다. 이리 저지른 최근 몇 년의 삶은 분명 저 위 어머니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인생 그 까이꺼’ 별 거 있나. 될 일이라면 된다.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나는 지금 닥치는 대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요새 들어 부쩍 ‘이 또한 지나가리니!’가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