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유소불위(有所不爲)

2017-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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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함원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한자를 학교에서 배우거나 한문투의 말을 자주 쓰곤 했던 세대는 '무소불위'(無所不爲, 못 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을 흔히 듣곤 했다.

과거에는 무소불위가 아주 흔했다. 정부가 권위주의에 의존해 운영되던 시절 사회 도처에 이를 일삼는 권력자나 실세가 많았다. 이들은 못하는 일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지게 한다'는 말과 함께.

민주화 이후 무소불위는 많이 없어졌다. '갑질'을 하면 금세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이제는 '없을 무(無)'를 '있을 유(有)'로 바꾼 '유소불위'(有所不爲)를 다짐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정부를 겪으며 "이게 나라냐?"라는 자체 진단을 내렸고, 이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된 사회로 왔다. 이럴 때일수록 유소불위의 시대 정신을 가져야 한다.

유소불위는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 31절'에 보인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창한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양심상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인개유소불인·人皆有所不忍)과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하지 않는 바'(인개유소불위·人皆有所不爲)가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맹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과 의(義)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유소불위는 사람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결코 ‘이것’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그 일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소불위(所不爲)의 개념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도 보인다.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두 사람의 재상 후보를 놓고 고민하면서 이극(李克)에게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이극은 "거시기소친(居視其所親, 평소 생활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과 친했는지), 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부유할 적에 함께 더불어 지낸 사람은 누구인지), 달시기소거(達視其所擧,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누구를 천거했는지), 궁시기소불위(窮視其所不爲, 곤궁할 때 어떤 일만은 하지 않았는지), 빈시기소불취(貧視其所不取, 빈곤할 때 그가 결코 취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시라(視)"고 답한다. 이에 문후는 "선생은 숙소로 돌아가시오. 나의 재상은 결정되었소"라고 말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소위 지도층들의 부패·타락·후안무치를 지켜보고 있자면, 사람이면 모두 지켜야 할 유소불위의 둑이 무너졌음을 느낀다.

대학, 종교, 법원, 언론은 한 국가를 떠받치는 네 기둥이라 한다. 이 네 기둥이 썩으면 나라가 통째로 썩어 무너진다. 연구하지 않는 철밥통 교수, 가난하고 힘든 사람은 외면하고 돈과 권력에 정신이 팔린 종교인, 돈과 권력자에 약하고 힘없는 서민에게만 준엄한 유전무죄(有錢無罪) 법조인, 해설이니 논설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조작에 가까운 선동 주장을 일삼는 언론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 사회 그리고 지도층에게 유소불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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