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 ​멜라니아가 온다

2017-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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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

트럼프의 방한을 앞두고 또 시끄럽다. 북핵문제가 어떻고 한·미 동맹이 어떻고···, 예의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그의 방한에 맞춰 독자적인 대북(對北) 제재안을 마련할 정도라면 한·미 공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정치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영부인 멜라니아(47)를 만나보자. 슈퍼모델 출신의 이 퍼스트레이디를 따라 ‘가을동화’ 속으로 떠나보자. 그가 트럼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뉴욕의 가을도 이미 깊었을 터.

멜라니아는 그동안 한국을 찾은 10여명의 미국 영부인들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슬로베니아(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이민자인 그는 고향에서 류블랴냐 대학을 2년 다니다 중퇴했다.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18세 때 밀라노에서 본격적인 모델의 길로 들어선다. 1996년 뉴욕으로 건너왔고, 2001년 영주권을 취득했다. 귀화해 미국시민이 된 건 2006년.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는 슬로베니아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했고, 어머니는 아동복 디자이너였다. 미 영부인들이 대개 백인 주류 엘리트사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멜라니아가 트럼프를 처음 만난 건 1998년 9월 뉴욕 패션주간에 열린 한 파티에서였다. 당시 트럼프는 두 번째 부인인 메이플스와 별거 중이었다. 트럼프는 멜라니아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으나 멜라니아는 주지 않았다. “그때 내 번호를 줬더라면 트럼프는 곧 나를 잊었을 것이다."  대신 멜라니아는 트럼프가 준 번호로 먼저 전화했고,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2005년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 배런을 낳았다. 트럼프로선 세 번째 결혼이었다.

21세기판 신데렐라인 그를 일부 언론은 ‘골드 디거(gold digger)'라고 부른다. ‘금맥을 찾는 여자’라는 경멸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가 2005년 크리스찬 디오르가 디자인한 사상 최고가의 웨딩가운을 입고 보그(Vogue)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했을 때 제목은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이었다. 당시 이 가운은 1500개의 크리스털 인조 다이아와 진주로 장식됐다.

그는 비키니 모델로도 활동했다. 모델로서의 그의 생활은 금욕적이고 엄격했다. 그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런저런 파티에 가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런 파티들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외출했다가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건 결코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진실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2016년 5월 17일 DOJOUR)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독신사업가 리처드 기어와 사랑에 빠진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설이 된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세대들은 나이도 잊고 두 사람이 맺어지기를 간구했던 기억이 새롭다. 로버츠가 배회했던 뉴욕의 그 거리를, 꽃다운 20대 슬로베니아 처녀가 또한 걸었을 게다. 꿈과 사랑을 찾아서 말이다. 영화이긴 해도 로버츠를 멜라니아와 단순 비교하는 건 어쩌면 영부인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해도 멜라니아는 남편을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든 여자다.

멜라니아는 아직 영부인으로서 뭘 할 것인지 공식적으로 언명하지는 않았다. 아이들 교육과 학교 왕따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어린이 보호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NN은 10월 28일 그가 트럼프와 얽히지 않고 자신만의 어젠다를 독자적으로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여타 퍼스트레이디들과는 다른 스타일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멜라니아는 백악관의 영부인 보좌 팀을 20여명에서 9명으로 줄였다. 양(量)보다는 질(質)이 중요하다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멜라니아에게 필요한 건 독립성(independence)이라는 지적이 많다. 상궤를 벗어난 언행으로 유명한 트럼프와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워싱턴 정가를 지배해온 기득권 세력과 섞이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다. CNN은 멜라니아가 남편의 이번 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면서 자신만의 단독행사(solo events)를 많이 소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순방은 그에게서 싹트고 있는 독립성을 보여주는 쇼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서울에서 평창올림픽 홍보행사에 참가할 것이란 보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멜라니아에게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1989∼1993년)의 부인인 바버라 부시 여사(92)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1989년 남편과 함께 방한한 바버라는 이웃집 할머니 같은 소박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부인이라는 역할과 직업이 자세히 규정되지 않은 사실에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당사자 자신이 그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지 다른 누구도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결코 영부인이라는 직분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함성득, 영부인론, 2001년)

영부인 멜라니아의 마음을 배려하는 환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발카나이징(Balkanizing)에 희생된 그의 옛 조국 유고나 분단된 한반도나 동병상련 아닌가. 트럼프 반대시위를 하더라도 멜라니아만은 피해갔으면 한다. 시위대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일단의 페미니스트들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슈퍼모델 멜라니아를 이 엄혹한 판관들은 과연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그들의 현학적인 칼날이 어디를 내려칠지 두렵다.

한국에 온 미국의 영부인들은 나름대로 우리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바버라 부시는 영부인의 국정 과다개입의 위험성을 알게 해준 반면교사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이 여전히 높다는 걸 절감케 했다. 미셸 오바마에게선 차별을 딛고 선 용기와 인내를 배웠다. 멜라니아에게서 우리는 뭘 볼까? 중요한 건 필자 같은 기성세대가 아니다. 젊은 세대다. 그들이 뭔가를 얻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의 머릿속에나 남아 있을 우리 사회의 고루한 여성관이라도 벗어던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 대통령 부인이 다녀간 나라에선 양성평등 지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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