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됐다. 자유한국당은 혁신의 일환으로 박 전 대통령의 출당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1심 재판을 앞두고 구속기간 연장에는 반기를 들며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당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건에 대한 당론 채택 여부를 논의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직 대통령의 차원을 떠나서 한 국민으로서 헌법이 정한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상의 1심에서 구속기간을 6개월 이상 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법리적이나 인권적 측면에서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홍준표 대표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치적실패를 사법적으로 묶어 진행하고 있는 재판을 보면서 탄핵을 해서 끌어내리고 집권까지 했으면 그만할때도 되었는데, 굳이 지방선거에까지 활용 하기 위해 구속영장을 재발부 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정치적 실패는 정치적으로 마무리 해야한다"면서 "모든 것을 가졌으면 이제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지도부의 이러한 태도는 불과 한 달 전, 당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혁신안과 사뭇 대조된다. 당시 혁신위는 당의 위기를 가져온 '정치적 책임'을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과 핵심 측근이던 서청원, 최경환 의원의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출당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당에서는 이날 결정을 '인권', '법리'를 들며 당내 문제와 선을 긋고 별개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입장 이후 혁신작업이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 체제와의 단절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 같았던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문제를 접하며 '온건'한 이미지로 돌아선 것은, 보수 지지층의 표심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보수층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내년 지방선거를 감안하면 표심을 무시할 수는 없다.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의 반발도 당의 뇌관이다. 결국 양날의 칼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 변화가 바른정당 등과의 '보수대통합'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애초에 한뿌리였던 바른정당이 내세운 통합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인적 청산이었다. 심지어 홍 대표는 이날 "바른정당 전당대회(11월 13일) 전에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보수대통합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 같은 지적에 "(불구속 재판 추진은) 법리적, 인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된다는 차원에서 결정했다"면서 "이 문제가 바른정당과 앞으로 보수대통합을 해 나가는 과정에 장애요인이 된다고 생각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야당의 시선은 따갑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대표의 페이스북 글은) 사법부의 판단을 사전에 부정하려는 것이며 국민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궤변의 극치"라며, "박 전 대통령의 범죄행위를 소모적 정쟁으로 몰아가려는 몰염치한 행위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